16. Overlap, 창조 도시의 필요충분조건

*overlap
① 부분적으로 덮다.
② 일부분이 일치하다.

녹색의 어우러짐과
항상 웃고 인사해주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가 되기를…
서로간 인식의 중첩을 이루는
도시기능의 ‘오버래핑’ 고민해야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곁으로 지나간다. 다른 누군가는 해먹같은 그네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게임을 즐기고 있는 팀들은 사실 회의 중이다. 식사는 모

▲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암스테르담 체험과학관(Nemo)의 옥상. 방치될 수도 있었을 도시 하부구조인 해저고속도로 위에 놓여진 건물의 옥상으로 공공 도시공간을 확장시켜 펼쳐놓았다. 누구나 접근해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저녁노을을 즐기면서 파티를 할 수도 있다. 도시공간과 기능과 삶의 입체적인 오버랩을 경험한다.
든 직원들이 모여서 함께 한다. 창의집단 구글(google)의 사무실 풍경이다. 구성이 조금씩 다를 뿐 전 세계의 구글 사무실은 이러한 창의적 공간구성 개념을 공유한다. 지나치게 심각하고 경직된 업무환경을 탈피하여 일과 놀이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며 직위고하를 막론한 소통의 자유를 통해 자연스럽고 최적의 컨디션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스북(facebook)사무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기업 NHN의 사옥 ‘그린팩토리’에는 각 층에 ‘하이브’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이루어지는 이 공간은, ‘타운’이라고 불리는 사무공간들의 입구에 위치하여 일상적 만남, 짧고 간단한 회의, 라운지, 커피, 우편함. 게시판, 협상테이블 등을 집중시켜 여러 근무집단으로 분산된 직원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소통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오래된 도시의 유기적 공간구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피스의 공간을 구축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시 창조도시의 가능성을 본다. 필자가 근무하는 울산대학교 건축대학 신관 3층에 오면 건축학전공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총 300여명의 학생이 열린 한 층 전체 공간에서 설계 작업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열린 공간 안에서 서로 배우고 대화하는 창의적 생산 공간에 대한 교육적 아이디어의 결과이다.

케슬러(A Koestler)는 오랜 기간 연구에 몰두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아르키메데스가 결국 부력의 원리

▲ 전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업무환경이라고 꼽히는 Google 사무실 전경. 마치 도시공간 속 놀이터와 같이 만들어진 사무실이다. 일과 놀이, 업무영역이 오버래핑된 좋은 사례다.
를 찾아낸 곳은 전혀 다른 공간, 즉 욕조였다는 예를 들며 이합(bisoci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문제의 창조적 해답이 문제의 본래 매트릭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트릭스와의 결합에 의해 생겨남을 보여준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이합이 창조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있어서도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인식의 공유, 혹은 중첩, 오버래핑(overlapping)이라고 한다. 너와 나의 인식의 영역이 겹쳐져서 그 인식 공간 안에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넓은 공원이나 찜질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계속 익명의 존재로 존재하다가, 나와 그가 동시에 눈빛이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 ‘소통’이 시작되며 심리적 경계가 순간 사라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인식공간의 중첩이 되면 대화의 관심사는 둘 사이의 공통분모를 공유하며 깊어진다.

도시디자이너와 관리자는 계획가에서 코디네이터 역할로 한 발 물러나 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오버래핑을 관찰하고 잘 부양해야 한다.

▲ 케슬러(A Koestler)의 이합(bisociation). 그는 문제의 창조적 해답은 문제의 본래 매트릭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트릭스와의 결합에 의해 생겨남을 보여준다.

합리적 조닝계획 하에 분리된 삶과 일터는 결국 도시의 공동화현상을 낳으며 도시의 생명력을 떨어뜨린다. 범죄율도 높아지니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도심 안에 있는 것이 불안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니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고, 이러한 불안감은 CCTV나 방범설비를 강화하며 도시를 더욱 경직된 곳으로 만든다. 이제 불안한 시민들은 자신의 집 앞에다가도 CCTV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한다.

뉴스에서 사람이 하루에 눈을 떠 다시 잠들 때까지 CCTV에 140회 이상 노출된다는 기사를 보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긴장 속에서 모르는 대상의 감시를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도시민들의 삶은 불행한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에 비해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온 젊은이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간의 접촉이 늘어나는 공간구조, 그럼으로써 건강한 삶의 오버래핑이 많은 마을에서는 CCTV보다는 커뮤니티가 긍정적인 감시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앞에서 예를 든 꿈의 직장, 페이스북 등의 기업에서 제공하는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인식의 공유를 기본 개념으로 하고 있다. 사람들 간의 선택적 연결을 통해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고 이것은 집단지성이 되어 놀랄만큼 큰 파급력으로 재전송(리트윗)된다.

필자가 바라는 도시는 이러한 소셜 네트워크가 온라인에서 그치지 말고 오프라인 도시공간으로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는 저녁식사 후 식구들과 슬리퍼를 끌고 동네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거나 동네 서점에 다녀오다 시장에 들러 떡볶이를 사들고 시원한 동네 평상에서 옆집 식구들과 우연히 만나 함께 먹는 일상의 장면이 새삼스러울 것 없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을 꿈꾼다.

SNS를 통해 가상의 인식세계에서 무수한 인식의 중첩을 이루지만 도시는 삭막해진다면 불행하지 않은가. 그러한 우려 또한 공유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창의적 집단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실험들을 펼치고 있다.

사실 문제와 쉬운 해결 모두 어쩌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옥외공간에 있다(공동주택의 공용공간을 포함하여). 옥외공간에서의 삶은 그 어느 건축적 개념의 조합보다도 풍요롭고 자극적이며 가치가 있다. 우리 아이의 등굣길이 CCTV를 의식하며 누군가의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며 오가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는 거리가 되기 보다는, 녹색의 어우러짐과 항상 웃고 인사해주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가 되기를 우리 어른들은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지 않은가.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접촉과 소통, 능동적이고 창조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도시기능의 오버래핑을 고민해야 한다.

밀도 높은 현대도시에서는 수직적 오버래핑 또한 고민돼야 한다. 도시에서 옥외공간을 사라지게 하거나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대형단지, 대형주차장, 대형마트, 대형몰 등은 신중하고 정교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비판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은 사람에게 흥미를 느낀다. 타인과의 소통,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기회, 그에 수반되는 크고 작은 가능성이 지닌 가치를 키워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 커뮤니티, 관리자, 시공자, 디자이너, 전문가, 공무원, 도시정책자 등 구성원 모두의 대화의 오버래핑이 시작되어야 한다.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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