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삼킬 줄 알게 될 때쯤에야
비로소 사람다워지는 것

▲ 김의도 건영화학 대표 국제PEN문학회원
대설이 지났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주엔 강원도 땅에는 엄청난 눈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겨울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시위나 하듯이. 앙상한 가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잠자던 외로움이 밀려온다. 좁게 열린 창틈으로 파고드는 겨울바람이 우리를 외롭게 만들고, 전깃줄에 스치는 금속성 바람들의 비명이 더욱 낙심하게 만든다. 구름 한 점 없는 영하의 푸른 하늘이, 잔잔한 가슴을 할퀴듯 다가오기도 하고, 한번 떠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이 고드름처럼 엉겨 붙기도 한다. 웃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감추고 있어도 사람이기에 그럴 때가 많다.

작가 박완서는 일찍 남편을 잃고, 사랑하던 아들마저 참척당한 후 수많은 낮밤을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외치며 신(?)과 싸웠다. 수백 번도 더 신을 죽이고 싶었고, 죽이고 싶어서라도 신은 존재해야 한다고 절규했다. 그러다 끝내 얻어낸 금언은 ‘외로움은 견디는 것이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했다. 부산의 바닷가 갈멜수녀원에서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 다음에서야.

늙은 사람들이야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지만 한참이나 땅위에서 살아야 할 젊은이들에게 아무런 꿈이 없다면 참으로 외로워지게 된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다면 다 된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거다. 매일 GNP나 GDP 같은 것들의 숫자적인 성장에 매달려 왔기에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임 향한 일편단심’ 의 사육신 성삼문의 가슴이 그들에게 없다. 그래서 인간은 목적이 없을 때 외로워지고 그걸 느끼기에 인간인 것이다. 외로움은 배부른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늙어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길러 내는 것이다. 눈물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삼킬 줄 알게 될 때쯤에야 비로소 사람은 사람다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 되게 해준다.

외로움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많이 느끼게 되는 감성이다.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인간은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혼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르기 때문에 외로운 거다. 고상할수록, 많이 알수록, 위대할수록, 훌륭할수록, 출세할수록 외로움도 그 곁에 따라붙어 인간을 괴롭히는 그림자이다. 임종을 앞둔 병실 창가에 외로움이 더욱 찐득하게 묻어나는 것은 이제 곧 먼 여행을 혼자 떠나가야 한다는 예감이 마음을 누르기 때문이다. 부자도 외롭고, 거지는 더 외롭지만 그래도 거지는 외로움에 이골이 나서 그저 그러려니 하는 체념이 있어 덜 할는지도 모른다. 수천 명의 갈채를 뒤로 하고, 무대를 떠나 혼자 있을 집으로 돌아오는 슈퍼스타의 외로움을 우리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군중 속의 고독이나 풍요 속의 빈곤 따위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다. 사랑은 화장실 같아서 한사람만 들어가면 만원인데,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외로움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빌어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오히려 힘든 일만 더 일어날 때 배신감을 느끼며 인간은 참담하게 되고 외로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신(?)과 거리를 두게 될 때 영혼은 더욱 피폐해지고 외로워질 뿐이다. 미련한 사람들은 웃고 있는 상대의 뼛속 외로움까지 읽지 못하기에 함께 있어도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외로움은 잠시 도망가는 듯해도 꺾이지 않고 흔들거리다 다시 엄습해 온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처럼.

어버이들이 자녀에게 내미는 돈, 그것 역시 외로움을 견디어낸 대가의 힘든 돈이란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저마다 각자의 독특한 방법으로라도 외로움과 싸우며 견디며 넉넉한 채 미소 지어 보이며 그렇게 살아야 하거늘…? 차라리 골이 비면 외롭지 않을지도 몰라. 짐승들처럼. 외로움이 한세상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어디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을 마냥 부러워하지 말자. 한순간 피어오르는 여름날의 무지개 같은 것일 뿐 인간은 항상 외로운 것이다.

김의도 건영화학 대표 국제PEN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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