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Yuppie & Duppies : ‘도시족(Urban Tribes)’의 다양한 도시접속 방식

* Yuppie 여피족(族) : 1980년대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 근교에 살며, 전문직에 종사하여 고소득을 올리는 일군(一群)의 젊은 부자를 상징하는 말로 젊은(young), 도시화(urban), 전문직(professional)의 세 머리글자를 딴 ‘YUP’에서 나온 말.

* Duppies 더피족(族) : 경쟁이 치열한 고소득 전문직보다는 소득이 떨어지더라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 우울한(depressed), 도시(urban), 전문직(professional)의 머리글자 ‘dup’를 딴 것.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 도시 구성하는 다양한 ‘도시족’
자유로운 고소득 전문직 여피족
경제력 대신 삶의 질 원하는 더피족
보보스·웰빙·딩크·다운시프트족 등
관심사 공유하는 소규모 집단 다채

■ 독특한 시도 ‘소행주’
성미산마을 주민 십수년째 공동체 생활
공동육아·도시형 대안학교 만들더니
여러 가구 모여사는 공동주택까지 건축
도시는 소비 대상 아닌 정주 대상 인식

리서치 및 정책전문가 마크 펜과 키니 잴리슨은 ‘마이크로트렌드’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에서 거대담론이나 대규모 주류 집단에 근거한 세상읽기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이 세계는 얽히고 설킨 미로와 같은 선택들, 즉 쌓이고 쌓인 ‘마이크로트렌드’들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음을 자세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 온산공단 배후주거지 덕신리의 원룸촌. 이른바 ‘산업유목민’, 즉 ‘잡노마드(job-nomad)’의 도시로서, 공단의 확장을 따라 점차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제공=유명희

세상은 주류를 따를 의무가 없는 ‘60억개의 작은 융기’들이 점유하고 있으며 인터넷, SNS의 소통도구를 통하여 그들은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망을 가질 수 있고, 그들의 조직이 단 1%만 되어도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영향력을 갖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도시는 이렇듯 개인선택의 위력과 소규모 집단들의 취향과 삶의 방식의 통합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번 도시탐험은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도시족(urban tribes)’, 혹은 ‘문화종족(culture tribes)’을 살펴보고 그들이 도시와 접속하는 방식과 그들의 삶의 패턴이 도시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

‘도시족(urban tribes)’은 프랑스 사회학자 Michel Maffesoli이 1985년에 처음 사용하였는데, 도시지역에서 서로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규모 집단을 말한다. 그는 대표적인 도시족의 하나로 ‘펑크족’의 예를 들었는데, 도시족들의 사회적 상호관계는 매우 비공식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1세기 현대사회에는 무수한 ‘족’들이 언급되는데 상업적인 마케팅이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트렌드와 ‘-족’간의 긴밀한 관계를 주목하기도 한다.

▲ 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동경의 ‘프라다 에피 스토어’. 개인적 만족을 위해 최고 수준의 삶과 소비생활을 추구하는 이른바 ‘여피족’의 욕망은 첨단의 디자인과 기술을 입은 명품매장들로 즐비한 현대도시의 중심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진제공=유명희

최근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 ‘섹스 인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는 전형적인 ‘여피족(yuppies)’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여피(Yuppie)란 젊은(Young), 도시화(Urban), 전문직(Professional)의 머리글자를 딴 ‘YUP’에서 나온 말로, 그녀는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제력을 지닌 뉴요커로서 개인적인 취향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며 자유로운 주체적인 삶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편견에 치우치거나 우월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행동거지에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세련된 인간관계를 추구한다. 명품구두에 대한 사랑조차 미워할 수 없는 ‘캐리’ 매력은 그녀의 정직한 감정 표현에 있다. 가끔 예기치 못한 대인관계에서 당황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광장’에 중심을 두는 전통적 규범보다 ‘개인적 밀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특징을 지녔을 뿐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베이비붐 시대의 풍요로운 세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현대도시 공간의 상업적, 문화적 발전은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는 그들의 욕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와는 반대로 ‘더피족’이 있다. 더피(Duppie)는 우울한(Depressed), 도시(Urban), 전문직(Professional)의 머리글자 ‘dup’를 딴 것으로. ‘여피족(Yuppies)’에서 앞의 ‘y’만 ‘d’로 바꾼 것이다. 더피족은 여피족에 이어 2000년대 중반에 나타난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우리말로는 ‘우울한 도시 전문직 종사자’ 정도로 경기침체로 인해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임시직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도시 전문직을 가리키는 말로 출발했으나 현대사회의 경쟁과 스트레스를 거부하고 차라리 소득이 떨어지더라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을 전문직종의 사람들로 의미가 확대되어 지금은 두 가지 개념이 함께 쓰이고 있다. 이들이 여피족과 다른 점은 개인보다는 공동체 가치를 지향하고 꼭 도시보다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도시와의 접속방식은 보다 정주성을 지향하는 독특한 양상을 기대할 수 있겠다.

▲ 성미산 마을 ‘소행주’ 1호 주택 전경

사진제공=마을기업‘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거만들기’

경제력과 문화적 측면에서 ‘히피족’ ‘여피족’과 ‘더피족’, ‘보보스족(Bobos-소비보다 문화적 고상함을 강조함)’이 있다면 삶의 목표와 형태의 측면에서 ‘웰빙족(Well-Being)’ ‘다운시프트족(Downshift)’ ‘슬로비족(slobbie-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등이 있고, 아이의 유무를 기준으로 ‘딩크족(Dink-정상적인 부부가 의도적으로 자녀를 낳지 않음)’, ‘듀크족(Dewk-아이가 있는 맞벌이 족)’, 이밖에 취향에 대한 ‘코쿤족’ ‘키덜트족’, 직업에 대한 ‘잡노마드족(Job-Nomad)’, 그리고 최근 새로운 경제주체로 부상중인 인터넷 엘리트 ‘예티족(Yettie)’에 이르기까지 실로 독특한 도시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실 이들의 명칭이나 분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도시를 구성하는 시민의 개성과 성향들을 분석하고 그들이 도시를 점유하는 방식, 연관을 맺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며, 창조적 도시전문가들은 이러한 작업을 이미 진행해 왔다.

이따금 필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서울 성미산 마을 주민들은 도시 한가운데서 십수년 가까이 마을의 공동체를 진화시키고 있다. 배수지 공사로부터 성미산을 지키고 수년간의 자전거 모니터링을 통해 한강에 이르는 자전거도로 신설을 이끌어내고 공동육아, 방과후 보육네트워크를 넘어 12년제 도시형 대안학교를 만들고 생협, 의료생협, 공동체 라디오, 마을축제, 마을학교와 극장을 일궈온 그들이 드디어 공동주택을 만들어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다. 여러 가구 가족들이 모여 땅을 고르고 자신의 개성을 반영한 독특한 공간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을 함께하고 완공된 후에는 한 가구마다 한 평씩 기부하여 만든, 공동주방이 있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식사와 영화감상 등을 함께 하기도 한다. 구성원도 다양하여 독신자들로 이루어진 비혼자 주거도 있다. 개성을 존중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족’으로 계열화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만 전문직 구성이 많은 반면 소비보다는 공동체적 삶을 향하는 면에서 ‘여피족’보다 ‘더피족’에 가깝고, 생협을 중심으로 건강한 먹거리와 생활방식을 지향하고 삶의 여유를 좇으려는 점에서 ‘다운시프트족(downshift)’, 맞벌이지만 평균 1-2명의 아이를 낳고 공동체적 육아를 지향하는 점에서 ‘듀크족(DEWK-Dual Employed with Kids)’에 해당할지 모르겠다.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타 지역보다 정주율이 높은 이 마을 주민들은 도시를 단지 스치거나 소비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적극적으로 접속하여 진화시켜 나가는 정주의 대상으로 여기며 그 중심에 아이들이 있다. 그들의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은 개인의 다름을 바탕으로 한 자유롭고 성숙한 소통문화에서 샘솟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도시론’ ‘창조계급론’으로 유명한 리처드 플로리다는 최근 ‘후즈 유어 시티 who’s your city?’라는 저서에서 삶에 있어 직업의 선택, 인생의 동반자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가 ‘어디서 살 것인가’, 즉 삶의 장소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의 요점은 이제 세상은 단순한 부의 편중이 아니라 유연하고 포용력이 넘치는 ‘창조계급’이 모이는 지역으로 집중된다는 것이다. 어쩜 이 마을이 리처드 플로리다가 말하는 창조도시의 건강한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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