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생에
꽃으로 맺은 약속을
잊지 아니하여 왔더니
소낙비에
사나운 바람에
복사꽃 짧아서
붉은 꽃잎 편지는
갈기갈기 찢어져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네
조각난 저 편지
한 잎, 당신의 입술을 읽네
한 잎, 당신의 눈을 읽네
한 잎, 당신의 가슴을 읽네
한 잎 저 글속에
내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더니
복사꽃 편지의 나를
당신이 읽고 있네
한 잎, 거친 손을 읽네
한 잎, 뜨거운 혀를 읽네
한 잎, 숨 가쁜 나의 뼈를 읽네.

■ 김종제 시인은
1960년 강원도 출생. 1993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정시마을 회원. 시집으로 <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 <내 안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이여> 등이 있다.

복사꽃이 한창이다. 벚꽃이 지고난 뒤의 섭섭한 마음을 빛깔조차 고운 복사꽃이 그 허전함을 메워주고 있다.

▲ 이기철 시인

하지만 바람이 불고 비 오는 날이면 ‘붉은 꽃잎 편지’는 내 가슴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복사꽃은 ‘한 잎’ ‘한 잎’ 그대로 ‘당신’이 되어 어쩌면 오늘도 허망한 마음인 자들에게 위안이 되어 준다.

복사꽃의 운명은 그러한가 보다.

어릴 적 자주 불렀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처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주 질긴 그리움의 인연으로….

이기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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