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걸수 울산시 북구의회 사무과장
예쁘게 꽃단장을 한 신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신부를 보는 순간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신부아버지와는 고향친구이자 입사 동기라서 가족 간에도 막역한 사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는 어릴 때부터 줄곤 지켜봐 왔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 애들과 소꿉놀이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결혼식장은 마치 어른을 만들어 내는 공장을 방불케 하는 것 같다. 주말이면 여러 개의 축의금 봉투를 지인들에게 부치기도 하고, 때론 하루에 두세 곳의 예식장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어떨 땐 축의금을 내기위하여 줄을 길게 서는 등 혼주에게 눈도장만 찍으면 할 일을 다 했다는 것 등이 오늘날의 결혼풍속도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예식만큼은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이 다되어가자 하객들로 자리가 거의 메워졌고 안내방송이 흘려 나왔다. 그런데 단상에 계셔야 할 주례 선생님이 보이질 않았지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양가 어머니가 화촉을 밝혔다. 신랑신부가 서로 맞절도 하고, 성혼선언문도 낭독하는 등 결혼식이 착 착 진행되고 있었다.

주례 선생이 없이 예식을 한다는 말은 얼핏 들어는 보았지만 막상 텅 빈 단상을 보니 뭔가 어색해 보였다. 여기까진 보통 결혼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예식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예고 없이 사회자께서 “다음은 주례사가 있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신부아버지를 소개하였다.

내 친구인 그는 손 안에 조그마한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일어서더니 단상에 올라가질 않고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그 순간 대부분의 하객들은 신부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귀를 쫑긋 기울였고, 경청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는 긴장된 탓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양가 혼주를 대신하여 하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고이 길러서 혼례를 치르는 일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라고하면서 주례사를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내 딸 유림아! 아빠 엄마는 너로 인하여 언제나 행복했었다. 너의 시어른들께서도 너로 인하여 행복하셨으면 정말 좋겠구나. 언제 보아도 든든한 우리 사위 지금까지도 잘해 왔었겠지만 앞으로도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 주게” 평범한 주례사였지만 축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딸과 사위에게 아버지가 직접 한 주례사인지라 입체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고, 딸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순간 내 자신에게도 잔잔한 감동이 와 닿았다. 다른 분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는 것을 확연히 읽을 수가 있었다.

어릴 때 성장하는 모습들을 하나 둘 얘기하였고, 부모로서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맘 아파했을 땐, 마치 내 자식인 양 착각을 하기도 하였다. 짜임새 있고 세련된 주례사는 아니었지만 결혼식다운 분위기를 충분히 압도하였다. 하객들 모두가 공감을 하는 분위기였고, 다들 그 어떤 주례사보다도 알차고 훌륭했다는 말 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짧은 주례사 중 엄마와 딸이 한속이 되어 울컥하는 모습도 몇 번 비쳤다. 그럴 때마다 친구도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맘을 추스르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아마도 자신마저 감정에 북 받치면 주례사를 끝까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 순간 가족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신랑 신부에게는 아버지가 직접 해준 행복한 주례사를 오래도록 간직 할 것이고, 아버지는 아비로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딸자식의 결혼식이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축하객의 한 사람으로서 한 동안 따뜻한 결혼식으로 기억 될 것 같다.

삼십여 년 전의 내 결혼식이 떠올랐다. 그 땐 주례 선생이 직장상사였다는 생각만 날 뿐 무슨 말들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비록 긴 세월이긴 하나 감동이 없는 일상적인 주례사로 내게 와 닿는 말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만큼 서로가 잘 아는 사이는 없을 것이다. 많은 일가친척들과 축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하는 감동의 스토리가 있는 주례사가 아름다운 주례사가 아닐까.

강걸수 울산시 북구의회 사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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