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닿는 자들만 갈 수 있는 곳’

보석같은 산사의 보물같은 비경

▲ 이동웅 전 울산여자고등학교 교장
모처럼 1박2일의 여가를 내어 팔공산(1167m)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300여개의 절집 중 가장 높은 산정 바위 위에 자리한 중암암(780m)을 향했다. 이른 새벽 1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영천 은해사였다. ‘중암암’이란 이름석자가 낯설게 느껴져 호기심이 더한다.

은해사에서 4.8km 거리이며 산중 암자까지 차로 들 수도 있지만 백흥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2.3km는 도보 산책이다. 사찰도 좋지만 사찰을 찾아가는 이런 길이 항상 기대 된다. 바위와 송림, 그리고 활엽수들로 잘 조화된 빼어난 주위 경관과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오르니 삽살개 두 마리가 반갑게 짖어대며 우릴 안내하러 나왔다. 경내로 들어서니 기암괴석과 아름드리 숲이 빽빽이 들어차 산중 숲속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온통 기묘한 바위산이다. 그래서 ‘인연이 닿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보물 같은 명소이다.

돌구멍을 통하여 바위 위 벼랑에 자리한 작은 법당에서 함께 예를 표하고 삼층석탑을 지나 욕심이 많으면 지나지 못하는 극락굴 앞에 이르렀다. 이틈을 통과해야만 소원이 이루어지고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라는 전설이다. 겨우 어른 손 한 뼘 정도의 갈라진 바위틈으로 일행 세명은 십여분 이상을 시름한 끝에 겨우 통과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되는 사람은 아무리 신체가 튼실해도 통과할 수 있다는 극락문을 필자는 통과하지 못했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야지. 욕심내어 잘못 들어갔다가 틈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면 그일 감당은 또 어쩌라.

밧줄을 잡고 계단과 비탈진 바위를 오르니 넓은 바위지대인 전망 좋은 곳이 펼쳐진다. 여기서 우축 방향 삼인암으로 향하니 만년송이다. 바위틈을 비집고 굵고 길게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 뿌리를 보고 넋을 잃었다. 만년은 아니지만 만년이상 살아 여기 이 역사와 풍광을 오래 오래 지켜달라는 애절한 바람으로 명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만년송 주위의 기암괴석에서 바라본 팔공산 자락의 풍광과 산세가 예사롭지가 않다. 새벽잠을 설치며 바위를 오르다 밧줄을 놓쳐 넘어지며 힘들게 오른 아이들도 여기 이 정상에 서서 감탄 또 감탄이다. 삼인암 느른 바위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살랑 살랑 불어오는 솔 향에 취해, 지나가는 시간의 뒤안길에 반성하는 작은 시간도 가져보고, 성냄도 말며 욕망을 다스릴 줄 알아야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법을 배운다.

어떤 암자보다도 가장 유서가 깊고 재미있는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깊다는 해우소 이야기 한 소절이 전해온다.

통도사와 해인사, 중암암의 스님들이 절 자랑을 시작했는데 먼저 통도사의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지 열고 닫을 때 문고리에서 쇳가루가 한말 석 되가 떨어진다.” 해인사 스님이 질 수 없다. “스님이 많은 우리 절은 가마솥이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쑤면 솥 안에 배를 띄워 노를 젓는다.” 중암암은 자그마한 암자니 대찰들과 규모야 어디 비할 수 있을까. 그래도 중암암 스님은 지지 않는다. “우리 절의 뒷간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루에 볼일을 보면 그해 섣달그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재미있는 허풍 전설이다.

보석 같은 산사 아름다운 비경 꼭꼭 숨어있었지만 보물찾기 하듯 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천천히 반 박자 쉬어가면 선사들의 잠언을 만나 마음을 다독이게 되고, 이 좋은 길을 걷다 보면 신록에 비친 청아함처럼 마음도 고와질 것이다. 가을 단풍이 기다려진다.

이동웅 전 울산여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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