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라는 막연한 말 대신 ‘행복’
‘받는 것’이 아닌 ‘이루는 것’으로
신년 인사는 “새해 행복하세요”로

▲ 유니스트 교수 경영정보학박사

정초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신년 인사말을 주고 받는다. 이화여대 한국어 상담소에 의하면 나이 어린 사람이 연로하신 어른께 이런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보다는 “새해 안녕하십니까?” “과세(過歲) 안녕하셨습니까?”라고 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조언한다. 1950~60년까지만 해도 주된 새해 인사말은 “과세 안녕하셨습니까?”였다고 한다. ‘과세’란 사전적 의미로 ‘한 해를 지남’을 뜻함으로 요즘 말로는 “새해 안녕하셨습니까?”에 해당한다. 당시의 가난하고 어려운 살림살이에 비쳐 볼 때 ‘안녕’이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게 됨에 따라 ‘안녕’을 넘어 ‘복’이 점차 중요시되던 시대상을 반영하여 새해인사도 ‘복’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사말이란 의례적으로 하는 상투적인 말로서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별 뜻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좀 생각해 보자. 우선 어떤 ‘복’을 의미하는 지가 모호하다. 왜냐하면 복의 종류도 많고 시대에 따라 다르며 사람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그리고 ‘받으세요’라는 것은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을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받으면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 같은 인사말을 들을 때면 가끔씩 농담 삼아 “어디에 가서 어떤 복을 받을까요? 기왕이면 그것도 알려 주세요” 라고 반문한다.

예부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말할 때 ‘오복(五福)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명예와 건강에 더하여 재물, 자녀, 그리고 장수를 말한다. 고도성장기에 가장 확실한 재물 축적의 수단이었던 집값이 근자에 하락함에 따라 ‘하우스 푸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는 주택을 보유한 것이 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자녀 수가 많은 것도 복이었다. 1960년대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시작되어 “덮어 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면서 권장자녀의 수로 4명을 제시하였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면서 10년 단위로 권장 자녀의 수를 절반씩 잘랐다. 그러다 1990년대에 산아제한 정책이 사라지더니 2000년대 중반부터 출산장려 정책이 등장한다. 하지만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에듀 푸어’가 생겨나면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3포 세대’ 즉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OECD 1위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31.2명으로 2위인 헝가리의 23.3명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은 감소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문제다. 특히 ‘노년 푸어’로 인해 노인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어 우리나라 전체 평균의 2배를 넘는다. 100세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경제적 빈곤상태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오히려 고통을 연장하는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인사를 할 때 자기 자신도 어떤 복을 어디서 받는지 모르면서 그냥 남듣기 좋게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것이 아닌가? 복이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혼자서 독차지할 것이지 남에게 가르쳐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미국에서는 “God bless you (신이 당신을 축복하기 바란다)”라고 한다. 이 경우는 축복을 하는 주체가 분명하다. 새해인사는 “Happy New Year(행복한 새 해)”이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신년사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이 없다. 대신 “새해에는 국민 여러분 모두 행복해지고, 바라시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라고 하였다. ‘복’이라는 막연한 말 대신에 ‘행복’, 그리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것’임을 구체화하였다.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다. 명예, 건강, 부, 자녀, 장수의 복이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줄테니 말해 보라.”라고 했을 때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막지 말고 좀 비켜달라”고 했다. 연초에 통과된 2013년도 예산 342조원 가운데 복지예산이 30%을 넘어섰다. 국민 행복시대가 복지예산 확충으로만 해결되는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마음 상태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새해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말 3.0으로 업그레이드시켰으면 좋겠다.

유니스트 교수 경영정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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