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은 말은 ‘소리’로 치부 무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막말’ 삼가고
밝고 긍정적인 ‘고운말’ 생활화해야

▲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쓴소리’라는 단어를 언론이나 일상속에서 자주 대하게 된다. “민주 비대위 ’사죄행보’…광주서 쓴소리 봇물 …”, “새누리당, 아무도 쓴소리 안한 게 문제”, “朴당선인에 쓴소리하는 분 많아질 것”, “중국 반체제인사들, 쓴소리 요청한 시진핑에 쓴소리” 등이고 조순형 전 의원은 쓴소리를 잘 한다고 하여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대학시절 부친의 말씀에 대해 “아버지, 무슨 소립니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반박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부친께서 정색을 하시며 “너에게는 내 말이 ‘소리’로 들리느냐?”면서 꾸중하셨다.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사과하였으며 그 후부터 ‘말’과 ‘소리’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교훈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듣기 싫은 말은 ‘말’이 아닌 ‘소리’로 치부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쓴소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듣기에는 거슬리나 도움이 되는 말’이고 이에 해당하는 한자는 고언(苦言)이다. 하지만 고언을 한글로 옮기면 ‘쓴 말’이 되건만 사전에는 이런 단어가 없으며 ‘쓴소리’가 당당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찌하여 ‘소리’가 ‘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고언의 반대말은 감언(甘言)이지만 이에 해당하는 한글 단어는 없다. 다만 북한에서는 듣기에 좋은 말이란 뜻으로 ‘단 말’을 쓴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건이 벌어지면 논리적 분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평소 갖고 있던 신념과 편견에 따라 쉽게 판단해 버리는 경향’있는데 이것을 ‘확정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즉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우선 듣기 싫게 되고 그래서 ‘단’ 것이 아닌 ‘쓴’ 것이 되며, 둘째로 듣기 싫어도 자신을 위해 유익한 말로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그래서 ‘말’이 아닌 ‘소리’로 바뀌기 때문에 ‘쓴소리’가 되어버린다. ‘쓴소리’가 진정한 충고가 되려면 ‘쓴 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충고가 꼭 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기왕이면 ‘좋은 말’로 충고를 해주는 것이 훨씬 좋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양약은 입에 쓰지 않으며 한약의 경우도 예전에 비해 먹을 기회가 적거니와 쓴약에 감미 성분을 넣어 먹기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말’중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막말’로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이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속된 소리 즉 ‘막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의 대접을 받고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과정에서 ‘막말’ 파문이 끊이지 않았다.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 ‘변절자’ 발언, 김광진 의원의 백선엽 전 장군에 대한 ‘민족 반역자’ 발언, 이종걸 의원의 ‘박근혜 그년’ 논란, 정동영 의원의 꼰대들 ‘늙은 투표’ 운운 발언 등의 거친 언사들은 ‘막말’이 아닌 ‘막 소리’이다. 이같은 막말들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흔히 사용되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심지어 지하철녀 시리즈에 막말녀가 추가되었다. 근자에는 법원에서도 고령의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막말을 한 판사에서 법원이 법관의 언행에 대한 최초의 징계를 내렸다. 여성 대통령론에 대한 비판으로 연세대 황상민 교수가 ‘박근혜 생식기 말고 여성 역할 한 것 없어’라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을 함으로써 막말 논란에 휘말렸다. 이런 막말은 막소리로 치부하여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하여 냇물에 귀를 씻었다는 옛사람처럼 막말을 듣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세상이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맞받아치기보다는 좋은 말로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이롭다.

이해인 수녀의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행복하다’, ‘고맙다’, ‘아름답다’라는 좋은 말들로 나와 주위를 밝게 하면 좋겠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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