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민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울산·양산)지구 차기총재

봄비가 내리고 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유리창 밖 희뿌연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얼마 전 후배에게 들은 상수 할아버지 얘기가 떠올라 자판을 두드려 본다. 후배가 상수 할아버지를 만난 건 3년 전쯤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클럽 회원들과 좀 더 의미 있는 봉사가 무엇일까 의논을 하던 중 누군가가 어르신들 목욕 봉사가 어떠냐는 제안에 몇 사람이 좋다며 의기투합하여 요양원을 찾아 가면서 부터였다.

활처럼 굽은 허리에 얼굴과 온몸에 검버섯이 더덕더덕 붙어있고 정신마저 잃어버리신 앙상한 모습의 상수 할아버지, 보릿고개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 주린 배로 품일과 소작을 하시며 논마지기를 장만하셨고 1남 4녀 5남매를 키워 출가를 시키고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실 즈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몸쓸 놈의 치매에 걸린 것이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내외는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를 혼자 집에 두기가 불안해 요양원에 모셔 놓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후배의 첫 목욕봉사 대상자였다.

몇 달을 봉사를 다니며 상수 할아버지와 친해졌고 간혹 정신이 돌아오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그럴 때면 효도할 기회도 주시지 않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더욱 났고 못 다한 효도를 상수 할아버지께 대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역시 목욕봉사를 잘 시작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사정이 생겨 봉사를 쉬게 되었다. 매주 그 시간이면 요양원에서 상수할아버지 등을 밀고 있을 시간, 다른 일을 보고 있으니 뭔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고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유난히 길게 느껴진 일주일이 지나고, 다음 주 요양원을 찾아 갔을 때 상수 할아버지가 넘어질 듯 뒤뚱거리며 달려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슬며시 손에 쥐어주셨다. 눅진한 사탕 한 알. 간병인의 말에 의하면 지난주에 주려고 했는데 안와서 일주일동안 주머니에 넣어두고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는 것이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수 할아버지에겐 나는 무엇이며 또한 누구일까. 해답도 찾기 전 그 상수 할아버지가 급성패혈증으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른 후 알았기에 빈소를 찾아 작별 인사를 못 드려 안타까웠다며 말을 맺는 후배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고 주위는 숙연해져 있었다. 요즘에도 또 다른 상수 할아버지가 계시기에 매주 목요일 두시면 어김없이 요양원을 찾는다고 했다.

우리 주위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마음을 나누는 분들이 많다. 생면부지인 분들을 찾아 노래와 춤으로 즐거움을 드리기도 하고 작은 요구르트 하나지만 일일이 나눠드리며 손 한번 잡아 드리고 잘 지내셨냐며 관심을 보이는 것, 보기에 따라 작지만 꼭 필요한 큰 봉사인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유죄다’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들은 사회를 아름답게 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물질적인 봉사도 중요하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봉사, 아프고 소외된 분들에게 우리가 있고 함께한다는 정신적 봉사가 중시되는 시점이다. 돈으로 얻은 마음은 돈이 없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지만 사랑으로 얻은 마음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봉사의 기본인 나눔과 돌봄에 아름답게 중독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동민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울산·양산)지구 차기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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