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교섭권 보장 위한 노동조합이
경영·인력배치 좌우하는 슈퍼 甲으로
노사상생 외면…도덕적해이 언제까지

▲ 이채필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

울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도시이다. 따라서 도시와 기업이 운명공동체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득 4만 달러가 넘는 도시에 진입한 울산은 기업도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제거하면 울산 시민과 전 국민이 바라는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울산을 상징하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상당기간 대한민국 노사갈등의 격전장이었고, 특히 극심한 분규에는 현대중공업이 한동안 더욱 비관적인 사업장이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1994년 여름 64일간의 파업과 직장폐쇄를 끝으로 노사가 합심 노력한 결과 18년째 무파업에다 노사문화 우수사업장으로 환골탈태하였다. 그러나 현대차 노사관계는 아직도 천덕꾸러기 신세이며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여파가 울산은 물론 나라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 특히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로서는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다.

노동권은 원래 힘없는 약자의 교섭력을 보강하여 게임의 룰이 공정해지도록 하기 위함인데, 현대차 노조는 회사의 인력 전환배치도 좌지우지하고 공장의 신·증설이나 신차 개발 등 경영권에 개입하는 ‘슈퍼 갑(甲)’으로 군림하면서, 기득권의 고리를 굳건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권의 남용이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 3월 현대차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았던 장시간 근로의 ‘과로 공화국’에서 벗어나 사람의 생체 리듬에 맞게 낮에 일하고 밤에 잘 수 있게 하여 근로자의 건강과 가족가치 복원 등 인간다운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근로시간 단축과 동시에 고용과 임금보전을 유지하는 대신 시간당 생산대수를 늘리기로 노사가 합의하였음에도 주말 근무수당과 관련하여 3개월째 노사간, 노노간 다투며 파행을 거듭해왔다. 현대차의 1인당 생산성은 외국이나 타사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는 모럴해저드에 빠진 ‘노조 공화국’ 현상과 사측의 취약한 노무관리 인프라가 쌍끌이로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외국과 달리 국내 현대차는 작업 시간-동작 실증분석(Time & Motion Study) 결과를 바탕으로 인력운용을 과학적으로 하지 않고 노조와 회사가 힘겨루기 주먹구구식으로 정하니 제자리걸음일 수 밖에….

한진중공업과 쌍용차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으면서 노사간 시행착오와 외부세력의 분별없는 개입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에야 재도약의 길로 접어들었다. 만약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더 빨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요, 휴직 근로자도 더 많이 복직되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전기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개별 기업사정을 무시한 채 근속년수와 가족 수만으로 임금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방식을 밀어붙이다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막강하던 노조도 해체되어 55.7%에 달하던 일본의 노조 조직률이 내리막길을 달린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쟁력 없는 노사관계로 살아남는 기업은 없다. 대기업 정규직 노사의 담합이나 과도한 노조의 탐욕이 계속된다면 국내 생산기지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하나라도 아쉬운 일자리가 오히려 대폭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번창하던 도시 폼페이를 일순간에 덮쳐버린 역사적 사건이 자꾸 현대차에 오버랩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기우일까. 나아가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면, 또 건강한 노사관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한 몸 현장에서 작업복 입고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도 물려줄 수 있으려면 ‘브레이크 없는 노동운동’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현대차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일본의 전기노조처럼 노조 공화국인 기업을 외면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노조도 설 자리를 기약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단체협약 노사협상부터 더 이상 늦기 전에 과거의 행태를 버리고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위하여 한 배를 탄 심정으로 상생의 길을 찾아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그래야 품격 있는 울산의 미래도 가능하니까.

이채필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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