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호 그림 이상열

“고기잡이배가 입항할 수 있는 곳을 추가로 허용해 주지 않으면 섬사람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이곳 인민들의 사정이 딱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포구의 추가 허용은 두 번 다시 말하지 말라.”

하나를 양보해 주면 또 다른 하나를 요구하는 것이 왜인이었다. 이러한 왜인들을 다루는 데 이골이 나 있는 이예는 그들의 제의에 단호하게 잘라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 사다모리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날도 대담은 날이 저물도록 계속되었지만 양측이 바라는 만큼의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담이 끝나자 소 사다모리는 이예를 정중하게 사관으로 모시게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다모리는 조정에 대한 태도가 공손해졌고 그의 말과 행동에도 진정성이 엿보였지만 아직 그는 겉과 속이 다르고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 그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실리를 주어 그가 그 실리 때문에 규약을 어기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이예는 생각했다.

이예는 대마도의 실정을 살펴보고 지역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 각 지역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도주와 최종적으로 정약할 내용과 그 실행 가능성 등을 타진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사다모리에게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두 사람은 정청에 다시 앉아 서로 합의한 내용을 기록하여 최종적으로 정약하였다.

첫째, 유치된 인물의 송환을 청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침(停寢)한다.

둘째, 도주의 문인이 없이 건너온 사송인은 접대하는 것을 불허한다.

셋째, 일본 각처의 사신이 귀환할 때에 바다를 지나는 양곡은 임의로 요량해 준다.

넷째, 섬 안 각처의 도서가 이미 만들어 준 것이라 할지라도 도주의 문서가 없는 선박은 즉시 돌려보낸다.

도주 소 사다모리는 자신의 부관인 츠에 지로사이에몬을 불러 내용을 확인시키고 이예를 따라 상국에 나가 조정의 하명을 받아오게 했다. 이예는 츠에 지로사에몬 일행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했다.

조정에 돌아오자 마자 예조에서 왜인 접대에 대한 사목(事目)(公事에 관하여 정한 규칙)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예가 대마도에 나가 있는 동안 열렸던 국왕과 대신들의 회의에서 문제의 논의를 이예가 돌아올 때까지 연기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상경하는 왜인은 장기간에 걸쳐 왜관에 체류했고, 삼포의 왜인도 상경한 왜인을 기다린다는 구실로 오래 머물러 있는 탓으로 경상도에 저장되어 있는 미곡과 장은 부족했고 자기들끼리 살인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밀려드는 왜인들을 규제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의정부의 대신 영의정 황희, 우의정 허조, 예조참판 권제, 좌찬성 신개, 우찬성 이맹균 및 첨지중추원사 이예가 참석하여 머리를 맞대었으나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해가 바뀌었다. 새해가 되면서 대마도로부터 통교자가 더 늘어났다. 그 수가 한 달에 천명을 넘어서서 연초 3개월 만에 3천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