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호 그림 이상열

세종 22년(1440년) 경신 2월 부산포에 머물러 사는 왜인 후지사부로(藤三郞) 등 39명이 양식을 받아내기 위해 모의하고 대마도 슈고 소 사다모리(종정성)와 소 시게나오(종무직)의 고위 관리들이 나왔다고 허위 보고를 한 것이 발각되었다. 조정에선 이들을 조사하여 대마도로 추방하여 치죄하기로 결정하고 그 일의 책임자로 첨지중추원사 이예를 임명했다.

대마도로 피신해 있던 소이전의 쇼니 요시요리(소이가뢰)가 죽고 그의 동생 쇼니 노리요리(소이교뢰)가 2월 29일 아시카가 요시노리(족리의교) 장군에 의해서 사면되어 큐슈로 돌아갔고 통신사 고득종 일행은 귀국길에 대마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이예가 전해들은 것은 대마도를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3월말 이예는 대마도로 떠나기 전 임금을 알현했다. 영의정 황희와 우의정 신개, 병조판서 정연, 예조판서 김종서가 입조해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 대마도에서 피신해 있던 소이전은 이제 대마도에서 영구히 큐슈로 돌아갔는가?”

임금이 이예를 보고 물었다.

“그러한 줄 아옵니다. 그러나 지금 대마도엔 종언칠(소 히고시치)과 종무직(소 시게나오)이 자신들이 보낸 사송인들에게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어 언행이 매우 불손하며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종언칠과 종무직이라고?“

”종정성의 방계인 종언칠과 종무직은 도주 종정성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회유하는 것이 또한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저들은 본래 생명을 가벼이 여기고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아니하는 무리들이라 염려되옵니다. 만약 그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면 다른 도적의 무리들과 연대하여 우리의 연변에 와서 다시 포학한 행동을 자행하고 날뛰면 변고가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이예는 최근 왜인들의 작태에 대한 소견을 임금께 아뢰었다.

“어쩌면 좋겠는가?”

임금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을 국가 대의로 타이르고 그들이 오랫동안 간청해왔던 삼포 이외의 지역에서 고기잡이를 허락하여 그 삶을 이롭게 한다면 왜인들은 성심으로 따를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대마도 왜인들은 고초도(거문도)와 같은 섬에 몰래 내왕하며 불법으로 고기잡이를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법을 묵인하고 방치하기보다는 새로운 곳을 지정하여 합법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새로운 곳을 지정하여 제도화하자고?”

“저들의 사정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옵니다.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들의 도적질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삼포에서 점차 늘어나는 왜인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추가 조어지역의 허용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만일 저들에게 추가로 조어를 허용한다면 어디가 좋겠는가?”

“신의 생각으로는 서여서도(전남 완도군 여서도)란 곳이 좋을 것으로 여겨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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