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이류 의미 담긴 ‘지방’ 대신
평등한 관계 나타내는 ‘지역’으로
내고장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을

▲ 임진혁 UNIST 교수·경영정보학 박사

‘지역’과 ‘지방’이란 단어는 흔히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지방방송과 지역방송이다. 하지만 그 의미의 차이는 상당히 크기 때문에 적절히 구별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은 전체 지역 중에서 한 영역을 지칭한다. 지방이란 중앙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서 중앙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하위 기구나 조직을 지칭할 때 혹은 서울 이외에 있는 것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KBS울산방송은 KBS중앙방송의 하위조직이므로 지방방송이지만 울산지역만 대상으로 하므로 지역방송이다. 울산방송(ubc)은 지역방송이며, 서울 외에 있기 때문에 지방방송이기도 하다. 한 단어가 가진 의미에는 가치 평가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지역이란 단어와는 달리, 지방은 중앙의 하부 즉 이류 혹은 서울이 아닌 변방 즉 시골이란 뜻을 내포되어 있다. ‘촌사람 서울구경하기’처럼 지방 사람은 견문이 짧거나 어리숙하다는 의미가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서울에서 전학을 오거나 서울말을 사용하는 학우들을 보면 ‘서울내기 다마네기, 맛존 고래 고기’라며 겉으로는 놀려댔지만 속으로는 부러워했었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한 후 가진 첫 미팅에서 만난 서울출신 여대생이 ‘부산에도 극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 한국에서 두번째 대도시인 부산을 이렇게 모르다니?’하며 황당해 했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삼일빌딩을 답사하면서 겪었던 필자의 촌사람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쓴 웃음이 나온다. 처음 타보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제복을 입은 안내양이 승객(?)들을 웃음으로 맞이했다. 그때 내가 가장 당황했던 것은 엘리베이터를 ‘요금을 내고 타는 것인가?’였다. 몇 층을 가느냐는 질문에 31층에 간다니까 얼굴에 야릇한 미소을 띄면서 28층이 제일 위니까 그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두 명의 제복입은 사람들이 꾸벅 절을 하면서 맞이 하였다. 대학새내기의 치기를 발현하기 위해 하얀 고무신을 신고 내리는 필자를 본 두 사람은 당황해 하면서 그냥 내려가란다. 졸업 후 회사에 입사하였을 때 회장님이 신입직원 회식에 초대하여 4년 전에 영문도 모르고 쫓겨난 그곳에 드디어 한 번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그 곳은 구한말 고종황제가 만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 사교클럽인 서울클럽이었다.

뉴욕타임지의 명칼럼리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인 ‘코드 그린: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교통과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평평한 사회를 기술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정보 및 생활의 격차가 거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은 지방이란 단어가 점차 퇴출되고 있다. 행정적 개념으로 ‘지방선거, 지방자치, 지방대학, 지방 국세청, 지방법원’ 등의 표현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지역선거, 지역자치, 지역대학, 지역 국세청, 지역법원’으로 표현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국이 아닌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류가 아니라 대등 혹은 평등한 관계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시하여야 한다. 용어는 필요에 따라 바꾸면 되지만, 정작 바꾸기 어려운 것은 지역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갖고 있는 지방 사람 의식이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에는 유능한 사람들은 서울로 가고 지방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패배주의 내지 자학적 의미가 포함될 수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스타벅스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갈 수 있었던 것은 획일화와 표준화에 기초한 글로벌 스탠더드 전략 때문이었다. 즉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같은 인테리어와 커피 맛을 제공함으로써 고향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도래한 후 글로벌 매출이 하락하고 수백 개의 점포 문을 닫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지역별 특성을 무시하여 토착화에 실패했다는 반성 위에 ‘다각화, 현지화’로 전략을 바꾸었다. 한국말로 부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같은 맥락에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전국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전통적인 애향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당당한 자부심을 갖고 지역을 사랑할 때 더 큰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랑가 몰라’.

임진혁 UNIST 교수·경영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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