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호 그림 이상열

초여름의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6월 초하룻날이었다.

왜선 두 척이 전라도 서여서도(완도 여서도)에 나타나서 그 섬에 정박하고 있던 제주도의 공선(貢船) 한 척을 약탈하고 사람을 죽였다. 명나라 해령위 지방을 약탈하러 갔다 명군에 격퇴되어 돌아오던 왜구들이었다. 왜구들은 제주도 공선에 타고 있던 사람을 26명이나 죽이고 5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들은 죄인을 섬으로 유배하고 있던 의금부의 백호(百戶)(죄인의 감시, 압송, 체포를 주로 맡은 6품 관리)마저 죽였다.

열흘이 지난 뒤 이 사건을 보고받은 임금은 진노했다. 임금은 의금부 지사 이형증을 전라도에 보내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도록 하고, 또 첨지통례문사 이계현을 경상도에 보냈다.

“고초도에 고기 잡으러 오는 왜인은 모두 구류하고 지세포에 거류하는 왜인에게도 왜적의 완악한 실상을 문책한 뒤 힐문하고 추국하여 범인을 밝혀내도록 하라.”

분노로 인해 임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각 포소에 와 있는 왜인들을 모두 구류하고 대마도주에게 사신을 보내 힐책하고 그에게 서여서도에 침입하였던 왜적과 그때 피랍된 사람들을 모두 찾아 보낼 것을 명하라.”

임금의 어조는 매우 강경했다.

“하지만 먼저 사람을 보내어 사건의 실상을 전하고 그쪽 사정을 파악하고 난 연후에 조관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의정 신개가 먼저 말을 했고 예조판서 김종서, 우찬성 황보인도 같은 뜻의 말을 했다.

6월 14일 조정에선 윤인소와 그의 동생, 그리고 내이포(진해)에 와 있던 왜인 연시라를 대마도에 보내 도주 소 사다모리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하게 했다.

그러나 이예의 생각은 달랐다. 윤인소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대마도에 들어가면 왜적을 잡아오기에 시기가 늦어질 것이고 그러면 자칫 그들을 잡아오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을 잡아오지 못할 때 대마도와 관계가 악화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6월 22일 이예는 정전에 나아가서 임금을 알현하고 자신이 가서 왜적을 잡아 오겠다고 자청했다.

“신이 듣건대, 이제 대마도에 사신을 보내어 잡혀간 사람들을 도로 찾아오려고 하신다는데 여건이 된다면 소신이 가도록 하겠나이다.“

”첨지중추원사 그대가 가겠다고 하였는가?“

임금은 놀란 표정으로 이예를 바라보았다.

”신은 젊어서부터 지금 이 나이에 이를 때까지 이 섬에 출입하여 이 섬의 사람과 사정을 두루 알고 있사오니, 소신이 가면 섬사람들이 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누가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다만 성상께서 신을 늙었다 하여 보내시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신이 성상의 은혜를 지나치게 입었으므로 죽고 사는 것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다만 함께 갈 종사관들을 선발하여 소신과 함께 갈 것을 명하시면 잡혀간 우리의 백성을 모두 찾고 왜적의 무리를 모두 잡아서 돌아오겠나이다.”

참으로 놀라운 용기였다. 고희를 넘긴 일흔 한 살의 노구로 감히 결정하기 어려운 용단이었다. 이미 그들의 소굴로 들어가 숨어버린 왜적을 잡아서 돌아오는 일이 쉽지 않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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