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호 그림 이상열

지금 대마도에서 한성으로 돌아가는 뱃길이다. 10월의 늦은 달이 얼음 꽃처럼 허공에 걸렸다. 바다와 달이 서로를 안고 깊어가는 이 밤, 시간은 어느 듯 삼경인데 잠이 오지 않는다. 밤바다는 거저 막막하기만 한데 오늘따라 달빛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구나.

내가 너무나 오랜 세월을 멀리 떠나 있었던 것 같구나. 참으로 멀리서 돌아가는 이 길, 반백년의 허허한 외방의 벌판에서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서 있다. 정확히 말해 47년의 성상을 이 길을 헤매고 다녔구나. 나는 귀천의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있음에 내 자신 앞에 숙연해진다.

대마도로, 그 험난했던 뱃길을 지나 유구로, 막부의 심장부에까지 바다와 땅의 수천만 리 길을 헤매고 다니다 비로소 돌아오는 길이다. 참으로 멀리서 돌아오는 길이다. 밤이 차갑다. 내 반백년의 발자취가 묻혀 있는 저 바다의 길이 이 밤 달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인다.

아비들아, 저 달빛 어딘가에 그리운 너희들의 얼굴이 보이고 휘하 가솔들의 얼굴도 환하게 떠오르다 지워지는 것 같구나.

그렇구나. 내 어릴 적에 그 온화했던 어머니의 얼굴도 저 어딘가에 웃고 있는 것 같구나. 지금이라도 당장 어디선가 손짓을 하며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데 돌아보면 아무도 없구나. 모두가 그립다. 밤이 깊어갈수록 달빛은 더 교교해지듯 나이가 들수록 육친의 얼굴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사일까?

47년 전에 왜구들에게 끌려갔던 바로 그 바닷길에 오늘 나는 우리의 변경을 침입하여 백성을 해친 왜구의 무리를 사로잡아 압송하고 있다. 이것 또한 묘한 인과의 응보라면 응보이지 않겠느냐.

가만히 보니 창살 속에 갇혀서 압송되는 왜적의 얼굴에도 달빛은 젖어 있더구나. 그들의 눈에 비친 그것도 달빛은 달빛이더구나. 손발이 묶인 채 달빛 속에 웅크리고 있던 왜적의 모습에서 야수와 인간의 두 모습을 보며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웬 일일까, 속절없이 깊어가는 이 밤, 달빛은 내 어릴 적 왜구들에게 끌려가던 어머니의 처절한 눈물 같기도 하고, 국토를 약탈하고 백성을 죽인 죄로 잡혀와 지금 압송되고 있는 야수 같은 저 왜적들의 참회의 눈물 같기도 하구나.

달빛 속에 돌아보니 길은 더 아득하구나. 바다의 길도 아득하다만 내 인생의 길도 참으로 아득하구나. 길은 그런 것이었다. 어디엔가 그 시작이 있고 어디엔가 또 끝이 있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마흔하고도 몇 번째 길이구나. 40차례 사행이었으니 왕복 80차례가 넘게 이 바닷길을 가고왔구나. 장장 수천만 리의 바닷길이었구나. 그 험난한 뱃길에서도 내가 살아남았던 것은 어쩌면 천운이었을 것이다. 천운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지 않았느냐. 그래서 사람들은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던 것일까.

길은 외로웠다. 길의 진실이 뜨거울수록 그 길은 더 외로웠다. 사무치는 외로움을, 온밤을 불면으로 뒤척이던 그 날들에는 키를 넘는 파도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울었고 풀리지 않는 나랏일로 노심초사하다 뱃전에 나가면 망망한 바다 끝으로 이름 없는 별들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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