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호 그림 이상열

대자연 앞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들, 역사의 정도와 진실이 왜곡되고 상처받던 시대의 외로움 속에서 내가 한없이 외로웠던 그 순간들엔 나는 스스로를 매질하며 사필귀정이란 그 평범한 명제와 대의란 명분으로 그 외로움을 이겨왔다.

경도에 사신으로 가서 심수암에서 일본 요시모치 장군과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칠십여 일이 넘는 시간을 보냈던 그 때의 달빛이 문득 생각나는구나. 나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오직 협상을 위한 피말리는 줄다리기를 하며 서슬 퍼런 쇼군과 맞섰던 그때도 달은 천리 밖 내 나라의 그리운 얼굴들을 실어다 주며 나를 독려하고 달래 주었다.

시간은 흘러가면 물거품처럼 저렇게 뱃길 속에 묻히고 말지만 길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만 남는 것이 아니겠느냐.

길은 나에게 삶의 엄숙한 명제와도 같았다. 나의 삶에서 길은 거기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길인 동시에 나라의 길, 인간의 길이었다. 참으로 험난한 노정이었다. 그러나 내 삶은 길의 그 고통스러움으로 인해 더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겠느냐.

그러나 이 밤 나는 마지막 나의 바닷길에 서 있다. 내가 헤쳐 왔던 그 험난했던 바닷길의 머나먼 여정도 이제 내 마음 속에 다시 거두어 가야 한다면 나는 비로소 길의 정체를 알 것만 같다.

나는 그 수많은 세월 동안 바닷길을 오가며 적의 소굴에 잡혀 있는 육백 육십 일곱 명의 포로들을 내 나라로 데려왔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끝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것이 나의 천추의 한이며 내 눈물의 오랜 근원이었다.

내 나이 고희가 된 그 세월 속에서도 그날 왜구들에게 잡혀가던 어머니의 모습은 돌이 되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여덟 살의 내 귀를 때리던 그 비명소리는 나의 귀청에 아직도 어제의 일처럼 쟁쟁 울리고 있다.

내 어머니가 끌려가고 홀로 남은 어린 날의 그 밤들은 너무 깊고 어두웠다. 캄캄한 나락과 같았다. 나는 나락의 절벽 앞에서 어머니가 그리워 몸부림쳤다. 혹시나 어머니의 기별이 있을까 해서 문풍지에 귀를 대고 기다리다 꼬꾸라져 잠이 들면 찬바람이 온몸을 들쑤시다 가곤했다. 그때 그 긴긴 밤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고 내가 거기에 왜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세월이었다.

대마도며 일기도, 그리고 규슈의 곳곳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그것은 한 때 힘없었던 이 나라 백성의 운명이었겠지만 바람이 불면 바람결에 아직도 어머니의 기별이 그립고 달이 뜨면 그 달빛은 나의 눈에서 눈물이 되는 이유다.

그러나 내가 왜적의 소굴에서 구해온 667명의 한 사람 한 사람은 나에게 어머니와 같았다. 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육친이 겪는 애절함과 그 고통은 바로 나의 고통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내가 그들을 찾아 그들의 육친에게로 돌려주는 것은 어머니를 찾아오려는 나의 갈망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고 인간의 정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 것인데 그들이 겪는 그 고통이 어찌 나의 그것과 다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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