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가르치는 과기대
경제발전 패러다임 바꾸는 창조적 발상
두 문화 융합 토양 갖추는 정부정책 필요

▲ 신국조 UNIST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어느 대학의 대강당 무대에서 학기말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화려한 한복을 차려 입은 8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순서에 따라 한 학기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동료 학생들과 교수들 앞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협주로 편곡된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같은 대학의 또 다른 연주실에서는 학기말 피아노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독주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두 대의 피아노에서 네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을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 분야의 대학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어느 과학기술대학교의 이야기이다. 이 대학의 교양과목을 살펴보면 ‘문학과 창의성’, ‘사회와 문화’, ‘문명의 발전’, ‘나의 정체성’, ‘효과적 커뮤니케이션’, ‘예술과 창의성’, ‘음악과 창의성’ 등이 있다.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폭 넓은 인문 및 예술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어 훗날 창의적 아이디어로 훌륭한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성장정책으로 ‘창조경제’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아마도 ‘경제’라는 말 보다는 ‘창조’라는 화두가 많은 사람들을 더 궁금하게 하는 것 같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경제 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창출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점은 과연 이 사람이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전 세계적인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창조적인 개척자는 과연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인류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창조적 아이디어로 인류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버린 위대한 몽상가로 나는 스마트폰의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모범적인 정통교육과 성장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는 젊은 시절의 황당한 방황조차도 그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위한 풍부한 자원이 되었다.

그가 터득한 것은 ‘창조적 아이디어는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에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란 그가 겪은 거친 인생역정을 미화하여 표현한 것이지만 그 본질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공장에서 계속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한 입 깨문 사과’로 애플사를 이끌다가 2011년에 타계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은 언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보다 먼저 이러한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다. 1959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권위있는 리즈강연에서 ‘두 문화’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스노우(C. P. Snow)는 ‘두 문화의 충돌점에서 틀림없이 창조적인 기회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라고 간파하였다. 그가 말한 두 문화는 바로 인문학과 과학기술인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국내 어느 대기업에서 인문학도 수 백명을 고용하여 일정기간 훈련을 거쳐 IT분야의 업무에 종사시키겠다고 한다. 무언가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쫓기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밀한 기획에 의하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비창조적인 발상의 극치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주체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가로이 뛰놀며 풀을 찾던 양이 뜻밖에 어쩌다가 맛있는 풀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경영에 쫓기는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그리고 더욱 장기적인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역시 정부가 나서서 창조적 아이디어의 창출을 위한 인문, 예술, 그리고 과학기술의 조화로운 융합을 위한 토양을 갖추어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신국조 UNIST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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