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충호 그림 이상열

“실라사야문은 지난해 6월 초하루에 제주도 대정에 침범했다가 체포된 왜적의 괴수 소애(蘇崖) 등 49명의 무리와 한 패거리로 밝혀졌습니다.”

형조판서는 말이 격앙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소상히 말해보라.”

“지난해 봄에 실라사야문과 돈사야문(頓沙也門) 등 왜적의 괴수 다섯 명이 그들의 추종자들과 공모하여 5척의 해적선에 나누어 타고 중국 절강 연안을 침략하여 노략질을 하다 쫓겨나게 되었는데 그 왜괴 중에 하나가 바로 소애란 자로 밝혀졌습니다.”

“이 왜적의 무리들이 대국(명나라)의 연안에 가서 노략질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임금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도 참으로 그 점이 염려되옵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의 영토를 침략하여 사람을 죽이고 노략질을 하였지만 그들이 우리 영토에 침범하기 이전에 대국의 영토를 침범하였다면 마땅히 그들을 사로잡은 사실을 알려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예조판서 김종서가 말했다.

“과인의 생각도 그러하다. 서성이란 자가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필경 보고 들은 것을 말할 것이므로 우리가 알리지 않을 수가 없지 않는가?”

임금의 음성이 무거웠다.

“전하, 서성은 이미 명나라로 돌려보냈습니다. 비록 그 자가 대마도에 잡혀 있었으나 그 자를 데려다 명나라 조정에 넘겨준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뜻을 행하여 보인 것이옵니다. 설령 그자가 왜적을 잡아온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조정에서 벌주어 처벌한다면 구태여 상국의 조정에까지 죄인들을 보내어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연안을 노략질하다 잡힌 왜적의 무리치고 중국 연안에 가서 노략질을 하지 않은 무리는 없습니다. 왜적들이 중국의 연안을 침범하였다 하여 붙잡은 죄인들을 명나라에 압송한 전례가 전무하옵니다. 따라서 이번의 왜적들도 그 처벌의 정도를 치계하고 죄인들은 보내지 않는 것이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예의 말이 무겁게 들렸다.

“사실은 그러하다만 우리의 처지가 그러하지 못하지 않소.”

임금은 지나치게 명나라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하, 그들을 모두 상국에 보내면 모두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옵니다. 정 그들을 보내야 한다면 그들을 모두 보내기보다는 일을 도모한 괴수들만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이예가 아뢰었다.

“왜적의 괴수만을 보내자고?”

임금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야목고라의 친아들로 병든 아비를 대신하여 잡혀온 실라입라라는 자는 그 뜻이 정성스럽고 참되므로 살려서 보내 주시옵고 제주에서 잡혀와 수감 중에 병으로 죽은 자가 네 명이나 되는데 그들에게도 죽음으로써 그들의 죄 값을 끝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의 생각은 도적의 괴수들은 명나라의 조정에 보내어 상국의 관계도 원활히 하고 또 죄가 적은 몇 사람은 살려줌으로서 신이 도주에게 말한 신의를 지키고 또한 도주의 체면을 세워주어 차후에 유익하게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옵니다”

이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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