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 (257)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흰소리도 하게 마련이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세상 物情(물정)마저 시원한 구석이라고는 찾기 어렵게 되면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여 큰소리로 부르짖어서 마음속의 스트레스(stress)를 해소할 수도 있다.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은 이불이고 땅은 깔개이며 산은 베개이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은 촛불이고 구름은 병풍이며 바다는 술독이네.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거나하게 취한 김에 일어나서 춤추는데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문득 崑崙山(곤륜산)에 걸리는 긴 소매가 못마땅하네.

이 시는 조선 중기 승려 震黙(진묵, 1562~1633)의 <無題(무제)>로서 물질에 구속되지 않고 살아가는 求道者(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취한 김에 일어나서 춤추다 보니 곤륜산에 걸리는 긴 소매가 거추장스럽다고 하여 대단한 과장법을 활용하고 있다.

손으로 大鵬(대붕)을 잡아 번개 불에 구워 먹고
南溟水(남명수) 다 마시고 北海水(북해수) 건너뛰니
泰山(태산)이 발길에 차이어 왜각대각 하더라 (작자 미상)

이 시조는 󰡔莊子(장자)󰡕 「逍遙遊(소요유)」의 상상적 동물인 붕새와 관련한 과장과 虛勢(허세)로써 왜소한 자신의 실체를 감춤으로써 현실의 桎梏(질곡)을 의식의 차원에서나마 극복하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 후기 학자 黃胤錫(황윤석, 1729~1791)은 「古歌新飜二十九章(고가신번이십구장)」에서 이 시조를 한역한 바 있다. 그는 “손으로 대붕 새를 잡아, 번개 불로 구워 먹네. 남명의 물을 다 마시고, 북해를 바야흐로 한 번에 뛰어넘네. 태산 꼭대기는 대체 무슨 까닭으로, 발에 차여 갈라지는가?(手捉大鵬鳥 炙之電光喫 吸盡南溟水 北海方一躍 夫何泰山巓 騞劃被足趯)”라고 하여 시조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살려 내고 있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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