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중의, 한시를 통한 세상 엿보기 (263)
물지게로 샘물을 지고 온 첫 경험은 지금도 鮮然(선연)히 뇌리에 남아 있다. 물지게는 보통 지게와 다르게 통 속의 물이 출렁거려서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웠고, 또 물이 통 밖으로 넘쳐서 집에 이르렀을 때는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金東煥(김동환·1901~? )의 시 ‘북청 물장수’를 읽으면서 먼저 떠올린 게 물지게의 균형 잡기였다.
고향의 공동우물은 이제 廢井(폐정)이 되고 말았지만 그곳은 고향에 들를 때면 일부러 한 번씩 찾는 추억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里閭蕭索人多換(이려소삭인다환)
마을은 쓸쓸하고 사람도 많이 바뀌었는데
墻屋傾頹草半荒(장옥경퇴초반황)
기울고 무너진 집과 담장에는 풀이 반쯤 무성하네.
唯有門前石井水(유유문전석정수)
다만 문 앞에는 돌샘의 물이 남아 있어
依然不改舊甘凉(의연불개구감량)
예전의 달고 시원한 맛이 변함없이 그대로이네.
이 시는 고려 문신 崔惟淸(최유청·1095~1174)의 ‘初歸故園(초귀고원,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가다)’으로, 객지에서 생활하다가 오랜만에 고향의 옛집에 돌아간 감회를 담고 있다. 고향이라고 찾아가니 마을은 쓸쓸하고 사는 사람도 많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예전에 살던 집과 담장은 무너지고 잡초가 반쯤 뒤덮고 있는 형국임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 반가운 것은 남아 있는 샘물인데, 그 물맛이 변함없이 달콤하고 시원하더라는 것이다. 최유청의 고향에는 샘물이라도 남아 있지만, 요즘 필자의 고향에는 샘물마저 상수도로 완전히 교체되고 말았으니, 고향에 간들 어디에서 옛 모습을 찾아야 할지 난감하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