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이해하려는 ‘감정이입’ 날로 줄어
희망버스 사태·남북 대화교착 등 유발
파트너로 인식하는 일이 협상의 출발점

▲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경영정보학 박사

입추와 말복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년이 유난히 더운 것은 전력난으로 인해 정부가 전력소비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실내 냉방온도를 26℃ 이상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특히 공공기관은 28℃ 이상으로 한다. 예비전력의 부족으로 인해 블랙아웃까지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더위와의 전쟁으로 인해 불쾌지수가 올라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적 요인보다는 개성공단의 개재여부를 두고 남북간의 대화 교착상태, 일본의 각료들이 작심하고 일으키는 망발사태, 국회의원들의 막말파문, 여야의 극한대립으로 인한 야당의 장외투쟁, 희망버스가 폭력버스로 변질되어 버린 폭력시위, 모금 퍼포먼스를 위해 한강에 투신한 남성연대대표의 무모한 자살사건 같은 사태들이 우리를 더욱 짜증나게 한다. 왜냐하면 더 나은 해결책이나 대안이 있을 텐데 굳이 그렇게 기 싸움을 하면서 극한으로 치달아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화가 나는 것이다.

감정이입(Empathy)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공감(Sympathy)과는 달리, 감정은 다를지라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끼는 지’ 혹은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견해도 고려해 보는 지’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 감정이입의 개인별 수준을 측정할 수 있다. 미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1980년 이후로 이 감정이입 지수가 하락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10년 사이에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75%의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감정이입이 30년 전의 대학생들에 비해 덜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충격적이다. 감정이입 지수가 하락하는 주된 이유로는 개인주의 발달로 인해 점점 자기위주로 생활하는 사회적 변화이다. 즉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감사, 존경, 유대감, 용서 같은 사회적 가치가 상실되고 있다.

심리학 용어인 ‘확정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 취해서 자신의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며 그 반대되는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미국의 공화당원 중 상당수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미국태생이 아니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기에 오바마 대통령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 광우병 괴담 그리고 최근의 일본 원전관련 괴담 등도 확정편향의 사례이다. 인터넷시대는 정보의 홍수라 할 만큼 엄청난 정보가 있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려는 확정편향적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적 MBA과정인 와튼 스쿨에서 협상코스를 강의하고 있는 스튜어스 다이아몬드 교수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저서에서 “진짜 협상 법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리고 상황에 맞게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대처 방법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협상학의 대가로 불리는 대니얼 샤피로 하버드대 교수도 자신의 책,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를 통해 비슷한 협상 이론을 주장한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협상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대를 적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찾기 위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이 협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최신 협상론의 기본취지는 놀랍게도 역지사지 (易地思之) 즉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보라’는 한국의 오랜 한자성어와 맥을 같이 한다. ‘군자도 자기주장은 적극 펴면서도 고집스러워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을 미워한다’고 공자는 말하였다.

상대방에게 약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밀려 타협과 조화보다는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는 현상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감정이입의 수준을 높여서 역지사지가 좀더 쉽게 되면 짜증보다는 동정과 배려하는 감정이 앞서게 되고 따라서 시민의식도 성숙하게 될 것이다.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경영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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