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하고 유동적인 ‘甲-乙 관계’
힘은 절제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 다해야

▲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아름다운 애첩, 판카스페가 있었다. 대왕은 헬레니즘 최고의 화가인 아펠레스를 시켜 판카스페의 눈부신 젊음이 사그러들기 전에 그녀의 전신상을 그리게 했다. 어느날 젊은 남녀를 한 방에 있게 한 것이 짐짓 걱정스러웠던 대왕은 불쑥 화가의 작업실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아펠레스와 판카스페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당연히 아펠레스와 판카스페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러나 대왕은 여태까지의 그 어떤 전투보다 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거뜬히 이겨낸 후 벌을 기다리던 화가에게 아끼던 애첩을 선사한다. 대왕의 엄청난 은혜를 입은 아펠레스는 그 후 더욱 분발하여 수많은 명화와 함께 판카스페를 모델로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를 남겼다고 한다.(아쉽게도 이 그림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제 주인공인 블라디슬로브 스필만의 2차 대전 체험담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유대계 폴란드인인 스필만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해 온 가족이 학살되고 홀로 살아남는다. 스필만은 점점 황폐해져가는 도시에서 공포와 굶주림과 고독을 처절하게 감내하며 위태롭게 목숨을 이어가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어느 폐허가 다 된 집 안에서 먹거리를 찾다가 독일군 장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몹시 두려워하는 스필만의 예상과 달리 호젠펠트 대위는 스필만이 피아니스트임을 확인한 후 그를 숨겨 주고 먹을 것을 구해준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스필만은 전쟁 체험기를 쓰면서 자신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를 밝힌다. 자기를 구해준 독일군 장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위의 두 가지 예화는 강자가 약자에게, 그것도 목숨을 담보 잡힌 약자에게 관용과 아량을 베풀어줌으로써 살아남은 자들로 하여금 관용을 베푼 자들을 더욱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준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 ‘멋지다!’라는 말로 감탄을 발한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갑을 관계’는 강자가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약자를 고통으로 내모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함축적 단어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갑과 을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평소 정치인은 국민에게 갑인 것 같지만 선거철을 비롯하여 많은 경우에 을의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이것은 당 나라 위징(魏徵)이 말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경우와 상통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정부 사이에도 갑을 관계가 이루어지며, 기업에게 갑으로 불리는 정부 역시 기업주에게 일자리를 늘려달라거나 투자를 촉진해달라고 할 때는 을의 입장이 된다. 또한 사용자와 노조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노조의 이해와 아량을 호소해야할 정도로 갑을 관계가 반대로 형성되기도 한다. 특히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이미 ‘갑 질’을 하고 있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외 많은 경우에도 갑을 관계는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다시 말해서 항상 갑인 존재도 없거니와 항상 을이 되란 법도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정하지 못하거나 불공평한 일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을 품게 된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회적인 불안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한 때 유행했던 ‘을의 반란’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에 갑과 을은 서로의 처지를 역지사지함으로써 갑은 을에게 아량과 배려와 나눔을, 을은 진심과 성실로 응답하여 서로에게 더 큰 이익을 만들어 간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힘은 절제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했다. 또한 절제된 힘은 그 가치를 알아본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상생이다.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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