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인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 없이
현상유지 하는 것으로 시간 흘려보내면
결국 비효율 문제로 더 큰 비용 치르게돼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몇 해 전, 경남 통영 인근에 매립지를 늘려 중소 규모의 조선소들이 증설되는 중이었다. 항만 매립 건을 두고 업체와 관계 당국 사이에 실랑이를 벌일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조선 경기가 얼마나 가겠나. 저렇게 증설을 하다가 된서리를 맞을텐데….” 앞 일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너나 할 것 없이 증설에 앞장 섰던 사람들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미 건설, 해운, 조선 등 3대 업종은 5~6년 전부터 정점을 치고 하락 추세에 있음에 대해 끊임없는 경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가면서 나아지는 능력이 있다면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든 개인이든 요행을 좇아서는 안된다는 점, 아픔이 따르더라도 계속해서 비효율이 발생하는 부분은 털어내야 한다는 점,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 자꾸 비효율이 누적되면 언젠가는 터지게 된다는 점, 이런 사실은 개인, 가정, 조직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모두 적용될 수 있는 진리이다.

근래에 우리는 몇몇 그룹의 구조조정 지연과 이로 인한 결과를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지연된 구조조정은 결국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에게 큰 피해를 남기게 되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을까? 단기적인 고통을 어느 누구도 감내하려는 의지가 없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어느 누구도 피를 흘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현상유지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흘려 보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금융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회사채로 돌려 막기를 오랫동안 해온 한 그룹을 금융당국이 어떻게 그토록 방임할 수 있었는가 싶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관계 당국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떤 경우든 피를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문제를 뒤로 미루게 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어물쩍 넘어가면 좋은 일인데 세상사가 절대로 그렇게 넘어갈 수가 없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없다면 결국 비용은 몇 배로 지불하는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우리 사회가 더 과감해지고 솔직해져야 한다고 본다. 낭비적이고 효율이 떨어지는 부분을 안고 어떻게 나아지기를 바랄 수 있는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대충 환부를 가리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매사를 처리하는 것이 역대 정권들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기대를 모으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피를 흘리더라도 비효율을 방치하려는 의지는 그렇게 강한 것 같지가 않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굵직굵직한 구조적인 과제들을 몰라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지만 그 것을 추진하는데 따르는 갈등과 고통을 어느 누구도 정면으로 돌파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아서이다.

정체되면 모든 것은 썩어가게 마련이다. 진통제를 투입해서 해결하려는 방법을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지금은 대기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지만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은 외면하고 있다. 그냥 넘어가서 되겠는가? 그렇게 해서 괜찮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인과관계를 보더라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결실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견고한 성벽같은 제도에 막혀 결국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연기금 개혁 문제도 그렇고 공기업의 부채 문제도 그렇다.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아무도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역대 정권들이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큼직큼직한 문제들은 대충 화장을 해 넘기는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장래에 큰 비용청구서로 우리 사회에 배달될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지출할 수 있을 가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왜, 예상 가능한 미래를 미리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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