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如其人, 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아
개성·습관·교육·경력 등도 고스란히
IT시대 속에 아날로그적 감성 아쉬워

▲ 신국조 유니스트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한시를 즐겨 쓴 김구(金九) 선생의 필체를 보면 조국광복의 염원을 품은 굳고 바른 애국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여순의 옥중에서 쓴 유묵의 필체에도 단아하고 맑은 기상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궁녀들은 왕비나 공주의 소일거리를 위하여 이야기책을 ‘궁서체’로 알려진 서체로 필사본을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이들이 남겨 놓은 작품들은 그야말로 혼신의 정성을 기울여 필사적인 노력 끝에 완성된 것으로 그 완벽한 형체가 너무나 아름답다.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쇠귀 신영복(申榮福) 선생의 한글 서체는 그가 옥중에서 모친으로부터 받은 편지의 어눌하고 소박한 그러나 힘 있는 글씨체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공들여 쓴 붓글씨가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의 펜글씨가 어떠했는지를 서로 알고 지냈다. 타향살이 중에 또는 해외 유학 중에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면 그 내용 뿐만 아니라 글씨체를 보면서 부모님을 대하는 듯 그리운 마음에 울컥하곤 하였다. 연애편지를 쓸 때면 글씨를 잘 쓰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대필을 맡기곤 하였다. 칠판에 써놓은 낙서의 범인을 그 교실에서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글씨는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하였다. 즉, 글씨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의 개성, 습관, 교육, 경력 등이 모두 나의 글씨에 묻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면, 글씨는 현재의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즉, 세월에 따라 글씨는 변하게 된다. 또한 수련에 따라 글씨가 좋아질 수도 있다. 여기서의 수련은 글씨 자체에 대한 수련뿐만 아니라 인격 도야를 위한 수양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글씨를 보면 단번에 그 사람의 현재의 됨됨이를 알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직원 채용 시 친필 이력서를 요구하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옛 학자들이나 문인들이 200자 원고지에 작성한 원고를 보면 그들의 인간적 프로필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또한 그들이 사용한 필기도구에도 그들의 개성이 깃들어 있다. 연필, 볼펜, 사인펜, 만년필, 잉크를 찍어 쓰는 펜대, 아니면 전통적인 붓 중 반드시 선호하는 도구가 있고, 색깔이 있고, 굵고 가는 차이가 있고, 농담이 다르고, 크기의 변화가 있는 등 그 원고 자체가 바로 다양하기 짝이 없는 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의 친필 원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중하게 보존되고 때로는 훗날 전시되기도 한다.

이제 컴퓨터와 스마트폰 만능의 IT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전통적인 글씨 쓰기 대신 자판 두드리기로 행위의 혁명이 일어났고, 정감을 지닌 아날로그적 글씨체가 개성과 감정이 없는 디지털화된 글씨체로 바뀌었다.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이제 프린트-아웃된 비인간적이고 개성이 없는 글씨체로는 작가의 또 다른 측면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글의 내용을 통하여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친필 원고가 사라진 IT 시대에는 과연 어떤 개성을 지닌 작가가 그러한 내용을 전달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프린터로 출력된 원고는 따로 보관할 의미조차 없다. 원고의 파일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 그 파일이 구형이 되어 새로운 워드프로세서의 파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고치기 쉽고, 저장하기 쉽고, 보내기도 쉽고, 복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아니 조금의 여유를 만들어서라도 다시금 펜으로 글을 쓰고 싶다. 문득 옛 친구에게 펜글씨로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도 펜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엄마”라고 자판에서는 다섯 번 두드리면 된다. 그러나 펜으로는 11획을 그려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고 그만큼 “엄마”를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판을 두들기면 항상 똑 같은 글자가 찍혀 나오지만 펜글씨는 매번 달라진다. 완벽한 궁서체가 아니고 좀 삐뚤어져도 “엄마”는 내가 직접 쓴 펜글씨를 보고 싶어 하시겠지….

신국조 유니스트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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