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현(현대청운고 2)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버스에 노약자가 탔을 때 망설임 없이 벌떡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져온 성리학의 영향이 강한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사회 내에서 ‘충’과 더불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를 가장 강조하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노인은 공경하는 것이 도리였다. 그리고 자신 보다 약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약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양보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버스 안에서 이러한 것이 없어졌다.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글에 임산부가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것을 보았다. 자신은 임신 32주, 약 8개월 차인데, 버스 안에서 아무도 비켜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꼭 비켜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데 아무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던 것이 섭섭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버스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은 노약자가 버스에 타 자신의 자리 앞에 서면 자리에서 비켜주는 대신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자는 척 하는 등 딴청을 피운다. 인터넷에서는 어르신 한 분이 자신에게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했다고 화를 내고 그 어르신을 욕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에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일부러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이 아닌 강요를 하는 사람들에겐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점점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사람들은 남보다는 나를 더 생각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노약자가 될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이 우리의 고됨과 아픔을 모른 척한다면, 우리도 지금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는 노약자들처럼 서러움과 서운함을 느낄 것이다. 모두가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는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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