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 애타게 기다리는 한국
정부차원의 기초과학 인프라 확충과
두터운 층의 연구인력 확보·지원을

▲ 신국조 유니스트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매년 10월이면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드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다. 그 중에도 노벨 과학상은 우리 모두가 애타게 한국인 과학자의 수상을 기다리고 있는 분야이다. 노벨 과학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과학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노벨 과학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민족은 유태인들이다. 그들은 과연 전 세계의 과학계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어떠한가. 이미 16명이나 된다. 하지만 우리는 노벨상이 제정되어 첫 수상자를 낸 1900년으로부터 무려 113년이 지나도록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한 것 같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과학상을 수상할 ‘그 분’의 흉상을 위한 받침대를 미리 설치해 놓거나 ‘그 분’의 이름으로 명명할 캠퍼스내의 다리를 무명으로 남겨 놓고 기다리고 있는 ‘그 분’의 출신 대학들도 있다.

연구비를 소수의 우수한 과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우리도 빨리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자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어왔다. 심지어 어느 과학자의 고향에서는 그 분을 위한 ‘노벨상 수상추진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하였으며, 1997년 어느 날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 노벨상 수상 추진본부’ 발기인 대회까지 열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도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아니 아예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아직 벼가 덜 익었으니 머리를 숙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쩌면 이런 칼럼조차 안 쓰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겠으나 노벨상에 대한 일반인 그리고 비 과학 분야의 국가정책 입안자들의 이해를 도와 드리고자 하는 충정으로 쓴다.

둘째, 노벨 과학상은 기초과학 분야에 주어진다. 따라서 국내에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 인프라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 당장 산업화가 되는 응용연구는 기업체가 앞장서서 지원하겠지만 그 응용연구의 토대가 되는 기초과학 분야의 진흥은 국가의 장기적인 과학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인 만큼 원천적으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또한 기초과학 연구는 주로 대학에서 많이 이루어지므로 대학에 대한 교육, 시설, 기자재 및 연구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노벨 과학상은 운동 경기의 금메달이 아니다. 소수 정예의 선수들을 집중 지원하여 훈련시키는 방식으로는 결코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소수의 연구자들에게 집중 지원하는 것보다 두터운 층의 연구 인력 확보와 이들에 대한 적정 수준의 폭 넓은 연구비 지원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과학 발전의 획기적인 발상은 대형 연구비를 지원받아 주위로부터 부담스러운 주목을 받는 소수의 과학자들보다는, 오히려 보다 적은 연구비를 받아도 비교적 부담이 적은 다수의 과학자들과 그들이 지도하고 있는 자유로운 발상이 넘쳐나는 수많은 젊은 과학도들에게서 나올 확률이 더 높다.

넷째, 과학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병사가 전장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진격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간절히 지키고 싶은 가족, 연인, 친구들의 뜨거운 격려와 응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농공상’의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1980년대 초반 국방과학연구소와 원자력연구소에서 그리고 IMF 위기 때 각 산업체에서 발생한 과학기술 분야 연구원들의 대량 해고사태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금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뜨거운 성원과 국가 지도자의 확고한 지원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벨상은 기초과학이라는 깊은 샘이 차근차근 고이고 넘쳐 흘러 화려한 꽃을 피울 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지 이를 위하여 무슨 추진본부를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기본에 충실하기만 하면 우수한 한민족의 두뇌에서 반드시 좋은 결실이 얻어질 것이다.

신국조 유니스트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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