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평화를 주는 가족의 힘 얻어
반듯한 걸음 걷겠다는 각오 다져야
귀성의 또다른 의미 새기는 설연휴

▲ 신국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오는 1월 30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설과 추석은 우리 민족의 최대의 명절이자 민족 대 이동의 장관이 펼쳐지는 때이다. 하지만 설과 추석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르다. 설에는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지만 추석에는 봄에 씨 뿌리고 한 여름 땀 흘려 거둔 풍성한 결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맞게 되면 모두 마음이 들뜨게 되지만 특히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소본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엄청난 귀성행렬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귀성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하여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곤 하였다. 질서를 잡기 위하여 경찰이 기다란 대막대기를 휘두르며 예매객들을 자리에 주저앉혀 얌전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게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이러한 귀성 열기는 혹한의 날씨에도 설 명절의 귀성 인파를 막을 수 없었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귀성객들은 고속버스로 몰리고 그것도 구하지 못한 손님들을 위하여 개인 승합차들이 비싼 요금을 받고 불법(?) 운송 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왜 이렇게 모두들 고향으로 고향으로 내달리는 것일까. 외롭고 각박했던 타향살이가 그렇게 서러웠던가, 아니면 타향에서 이루어낸 장한 성공담을 고향의 부모님이나 친지들에게 전하고 싶어서일까. 하기야 IMF를 겪던 시절에는 귀성행렬이 주춤하기도 했었다. 회사가 부도나고 직장에서 해고되니 고향에 돌아갈 형편도 면목도 없었으리라. 지난해에 타지에서 성공이라도 하면 좋은 차를 타고 선물을 가득 싣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을 찾는다. 예전에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에는 출세한 자식이 좋은 자동차를 몰고 내려오면 그 자체로 이미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곤 하였다.

고향(故鄕)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며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피는 것’이 바로 귀성(歸省)이다. 고향에 계신 늙으신 부모님이 안녕하신지 문안 인사드리고 살펴보아야 하고, 고향에 남아 있거나 또는 모여든 옛 친구들 모두 잘 있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뒷산에 모신 선조님들의 산소도 살펴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뒷산에 올라 집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이며 동구 밖 느티나무 등 고향 마을의 산천이 그동안 모두 잘 있었는지도 살핀다.

설 명절에는 온 가족이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님께 제사를 드리고 집안의 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난 후 오손도손 모여 앉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족은 하나다. 함께 걱정하고 함께 기뻐하며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타지 생활에서 눈치보고 살벌한 경쟁에 시달리다가 가족의 따뜻한 품속에 들어오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되고 다시금 재출발의 의지와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가족의 화목한 재회는 어린 아이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역시 귀성행렬은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을 만나 격려의 말을 듣고 재충전의 계기를 삼기 위하여 설 명절을 맞이하여 귀성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설 연휴 동안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는’ 자성(自省)의 시간을 갖는 것도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가 과연 지난해에 제대로 살아 왔는지 되돌아보고 새해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귀성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원래의 진정한 목표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의 다짐을 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기지 말라’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남긴 어지러운 발자국으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다도 자신이 먼저 되돌아보고 다시금 반듯한 걸음을 걷겠다는 새로운 출발의 각오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난해에 다급한 현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또는 불현 듯 치솟은 욕심으로 인하여, 또는 무심코 벗어났던 원래의 행로로 돌아가 다시금 본래의 마음의 자세를 되찾는 것이 바로 또 다른 귀성의 의미일 것이다.

나도 이제 만사를 제쳐 놓고 고향으로 가야겠다.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또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충전을 위하여.

신국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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