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매한 인품 보이는 존경받는 원로도
완고한 아집으로 권력 휘두를땐 외면
마음 비우고 베풀어야 젊은층과 교감

▲ 신국조 유니스트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요즈음 어느 방송에서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가 방영 중이다. 이 프로에 출연하는 이들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확고한 업적을 쌓고 명성을 떨쳐 온 4인의 원로 배우들이다. 이 프로를 통하여 시청자들은 외국의 명승지를 화면상으로 함께 답사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하여 이들의 또 다른 인간적인 면을 보며 즐거워한다.

그런가 하면 전에 총리를 지낸 어떤 이는 미수(88세) 축하 잔치에 때를 맞추어 서예전시회를 열어 노익장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전직 총리는 자선단체의 회장 시절 급한 결재로 인하여 약속시간에 찾아 온 방문객이 좀 기다리게 되자 문 밖에까지 나와 정중히 사과를 하고 직접 방문객을 사무실로 안내하는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고매한 인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도 이들처럼 되면 아름답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에서 은퇴를 한 후 국내 모 대학의 총장을 지내며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이는 한국 대학의 문제점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마도 자신의 경우와 혼동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성공한 사람은 완고해진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성공하였기 때문에 그가 걸어 온 길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고 다른 길은 다 틀렸다고 하는 독선적이고 외골수적 아집의 성향을 지닌 과거의 저명인사들을 우리는 많이 보게 된다.

후세를 위하여 자신의 성공담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다. 하지만 노년에 완고한 아집으로 아직도 현직에서 권력의 칼을 휘두른다면 이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과거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모든 여건이 달라진 현재를 재단하는 것은 때로는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차라리 원로에게 자문을 구하고 이를 현 상황에 맞게 잘 적용할 수 있는 순발력과 유연성을 갖춘 젊은 CEO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대체로 나이가 드는 과정은 힘들다. 육체적으로 병들기 쉽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취하기가 어렵다. 경제적인 상황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평균 수명이 81세 정도라니 직장에서 정년을 맞아 퇴직한 노인(?)들은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다. 남는 것은 시간이다. 주중에 인근의 산들은 이들의 하염없는 발길로 붐비고 있다. 전철도 마찬가지이다. 온양, 춘천, 용문행 전철은 배낭을 짊어진 남녀 노인들로 복잡하다. 이들은 모두 지하철 경로우대권을 지닌 ‘지공선사’들이다. 지하철 공사의 경영수지에는 지장이 있겠으나 거시적으로 볼 때 이들에게 소요될 의료비용이 줄어드니 국가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들만 모여 있으면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도심에서 떨어진 쾌적한 실버타운이 처음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도심 속의 실버타운이 더 인기가 있다. 병원이 가까워 안심이 되고, 쇼핑센터도 근처에 있어 새로운 상품뿐만 아니라 주변의 활기찬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은 삶의 원동력을 찾게 된다. ‘꽃보다 할배’가 진짜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할배들을 보살피는 젊은 도우미의 등장이다. 이들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정이 오가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세대 간의 따뜻한 교감이야말로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지만 또한 매우 어려운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살만큼 살았고 겪을 만큼 다 겪었는데 더 이상 무엇을 탐하려는가. 나서지도 참견하지도 말자. 둘째는 베푸는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음으로라도 너그럽게 베풀자. 재산이건 경험이건 결국은 이 세상에 남기고 가야하는 것이거늘. 대학교수와 장관을 지내고 저술과 강연활동으로 유명한 원로가 대학생을 위한 강연초청에 거액의 강연료를 요구한다면 과연 그 강연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신이 원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남녀뿐만 아니라 노소가 화목하게 지내는 조화로운 세상이었을 것이다.

신국조 유니스트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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