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봉 울산대교수·화학과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하지만 낮시간에는 아직도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는 날씨다. 매년 여름만 되면 에어컨 바람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에어컨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기도 한다. TV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시원하고 깨끗한 바람이 모든 에어컨에서 나온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에 냄새가 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에어컨을 새로 구입하여 첫 번째 여름을 맞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6월에서 7월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8월이 되어 본격적으로 에어컨이 사용되면 악취가 나는 에어컨이 사라진다. 온도가 많이 올라가면 에어컨의 열교환기에 묻어 있던 냄새성분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초여름에 에어컨에서 냄새가 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냄새가 나는 에어컨의 대표적인 사례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실내에 냄새가 나는 물건, 예를 들어 음식, 커피, 향, 리모델링으로 인한 접착제 등이 기화되어 에어컨 내부의 열교환기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에어컨을 틀면 점차 에어컨의 열교환기에 냄새 물질이 축적하게 되며, 찬 바람에도 냄새가 묻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집 중에서는 문을 모두 닫고서 에어컨을 튼 다음 에어컨 앞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곳도 있었다. 당연히 에어컨 바람에서 삽겹살 냄새가 진동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에어컨 앞에 커피 자판기나 커피 포트를 두고 커피 냄새가 에어컨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한 곳도 있었다. 커피 냄새가 에어컨 내에서 변질되어 악취로 변한다. 그리고 새로 가구를 들여 놓거나 리모델링한 상태에서 에어컨을 틀면 새집증후군의 원인이자 1급 발암물질인 폼알데하이드가 에어컨 바람과 함께 나와 눈을 따갑게 하는 곳도 있었다. 또한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떤 에어컨은 에어컨 내에 음식물이 묻어 부패된 다음 곰팡이가 자라 에어컨 바람 중에 곰팡이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이러한 냄새가 나는 에어컨이 있는 이유는 에어컨을 보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컨은 실내에 시원한 공기를 공급하는 기계이지 실내공기를 깨끗이 하는 장비가 아니다. 따라서 에어컨을 틀기 전에 실내에 있는 냄새가 에어컨 내부에 들어가지 않는지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양성봉 울산대교수·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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