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문제로 지지율 하락하는데도
박 대통령, 이 총리 진퇴 즉답 회피
신뢰 회복 위한 의혹 해소 시급해

▲ 정명숙 논설실장

“친분이 없는 사람”이라더니 1년에 217차례나 전화를 주고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64차례, 성 전회장이 이 총리에게 153차례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한 언론이 보도했다. 요즘 아이들 말로 “사귀나?”라고 물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이 총리는 “알고는 지냈지만 친분은 없다”고 했다. 친하다는 건 감정적 표현이기도 하니까 ‘자주 통화하고 만나기도 했으나 친하게 느끼지 않았다’고 딱 잡아떼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그를 총리라고 부르는 일반 국민들은 이 정도 통화를 자주 하면 ‘매우 친한 사이’라고 한다. 그로서는 유감스럽겠으나 정치인의 진실은 국민에 의해 평가되는 법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는 돈을 한푼도 안 받았다며 목숨까지 걸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의 진실은 아마 오래전부터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는 아주 다른 차원에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돈을 받았다는 증거물은 나오지 않았으니 목숨을 내놓을 것까지는 없겠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이 정도 거짓말을 했으면, 성 전 회장이 음료박스에 담아 전했다는 3000만원과는 상관없이 총리직은 스스로 내놓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니 진작, 국회에서 ‘목숨’ 운운하며 국격을 떨어뜨린 것만으로도 상당수 국민의 마음에서는 이미 총리가 아닐진대,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돌아올 때까지 일주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퇴의사를 밝혀놓고 대통령 귀국 때까지 국정을 챙기겠다는 것이면 모를까. TV화면 가득 그의 얼굴을 보아야 하는 국민들에게 27일까지는 지루하다 못해 아득하다. 그가 부정부패 척결의 상징인 4·19혁명 55주년 기념식에서 “국격을 높이고 세계 속에 당당한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기념사를 하는 아이러니를 얼마나 더 경험해야 한다는 말인가.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나면서 급작스럽게 여당대표를 불러놓고는 기껏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또 뭔가.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면 어떤 조치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면서 의혹 해소를 통한 신뢰회복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는 모르는 건가. 박 대통령이 출국한 날이 포함된 13~1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성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0%P)에서 박대통령의 지지율은 38.2%를 기록했다. 겨우 회복했던 40%대는 다시 무너졌다. 공자(孔子)는 정치에서 중요한 세가지로 식량, 군대, 신뢰를 꼽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들의 신뢰라고 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데 어찌 할거나.

여전히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왜일까.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직무수행도를 조사한 결과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54%)한 응답자들이 ‘인사 문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실장은 차치하고 총리만 보자. 김용준­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가 구설수로 자진사퇴한데 이어 이들 3명의 희생을 딛고 간신히 임명된 이완구 현 총리는 60일 남짓만에 ‘태풍의 핵’이 되어 있다.

법가의 집대성자인 한비자(韓非子)는 “호랑이를 위해 날개를 달아주지 말라. 장차 마을에 날아들어 사람을 골라서 잡아먹게 될 것이다. 대저 못난 사람이 권력을 잡도록 하는 것은 호랑이를 위해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이는 세상의 큰 근심거리다”라고 했다. 2250여년전 춘추전국시대 한비자가 오늘날 ‘성완종-이완구 사건’을 마치 들여다본 듯 말하고 있다. 공자는 ‘좋은 인재를 옳게 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 인재들이 찾아오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추천해주기 마련(擧爾所知 爾所不知人其舍諸)’이라고 했는데 박 대통령 주변에는 단 한명의 옳은 인재도 없었단 말인가.

정명숙 논설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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