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를 맞아 연중계획을 세운 것이 어제인 듯한데 어느 새 한 해의 끝자락에 닿아 있으니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잎이 다 떨어진 언덕배기의 교목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추위에 떨고 있고, 거친 줄기에 듬성듬성 매달린 아기사과 나무의 검붉은 열매는 보는 이의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이즈음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보면 왠지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연초에 설정한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이는 보람과 희열을 느끼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한의 상념을 떨치지 못한다. 한겨울 추위보다 심각한 청년층의 취업난, 베이비붐 세대의 대책 없는 노후생활 문제 등을 생각하면 공연히 한숨이 길어진다. 많은 이들이 묵은해의 출구와 새해의 입구가 교차하는 세밑 언저리가 되면 몸을 얼리는 혹한에 못지않은 마음의 오한을 느낀다고 한다.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거늘 기쁜 마음은 줄어들고
새해가 오고 묵은해가 가거늘 늙은 모습을 재촉하네.
묵은해가 뿌리치고 떠나감을 견딜 수 없거늘
새해가 닥쳐옴을 참을 수 있겠는가?

歲去年來歡意減 年來歲去老容催
不堪舊歲抛將去 可耐新年逼得來

이 시는 조선후기 문신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세밑(歲暮)>이다. 또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지만 새해에 거는 기대와 기쁨보다 늙어감에 대한 아쉬움을 더 심하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옛날 사람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는 왠지 마음이 다급해지고 까닭 모를 불안에 사로잡혔음을 알 수 있다.

한 해의 끝자락이 되면 새해의 희망을 노래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이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탕반(湯盤)에 새겨진 ‘참으로 날로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마다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자세로 새해를 맞아야겠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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