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만으로는 산재 예방에 한계
사업주 책임하의 자주적 노력 더 중요
노사 함께하는 안전시스템 확립돼야

▲ 유철인 울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최근 울산시 동구에 소재하는 한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이 선박 블록의 녹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다리차 작업대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블록 돌출부와 작업대 사이에 끼어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숨졌다는 보도를 접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울산지역의 이런 보도를 접한 게 벌써 여러 건이나 되니 필자가 모르는 사고까지 더하면 이미 상당수의 사망재해가 있었다고 짐작된다. 안전보건공단의 2015년 산업재해통계에 의하면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955명이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855명으로 해마다 1800여명이 산업재해로 인하여 사망하고, 전체 재해자수는 9만여명에 달한다. 또한 산업재해로 인한 직접손실액만 4조원에 달하고, 간접손실을 포함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19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사망재해와 같은 중대재해가 해마다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매년 일정한 패턴으로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해마다 법령이나 제도를 정비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하지만 이런 후진국형 재해가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도 산업혁명 이후 많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법체제만으로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줄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사업주 책임 하에 법에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사업장의 각종 위험요인에 대해 포괄적인 위험도 평가를 실시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하고 있다. 즉 법규정보다 사업주 책임하의 자주적인 산재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국제노동기구(ILO)도 사업주 책임 하에 노사공동으로 직장 내의 위험요인에 대처하여 산업재해예방에 자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한 조약들이 많이 제정됐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많은 화학물질이 새롭게 개발되고 적절한 규제 없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사용되고 있는 모든 화학물질을 법률에 규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최근에는 감정노동 등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문제를 법에 명시해 대처하는 것은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즉 이전에는 사업장의 물리적 인자와 화학적 인자 중 법률에 명시된 것만 중요시하던 것을 이제는 스트레스와 과로 같은 법에 규정돼 있지 않는 모든 위험요인들에 대해 포괄적인 위험도 평가를 하고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뒤늦게 국내에서도 산업재해 예방에 법률적인 접근이나 제도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사업주 책임 하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리스크에 대해 위험도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근로자들과 함께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개선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한국판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라고 해 각 기업체별로 갖추도록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기업체의 핵심적인 조직문화로 아직까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고, 실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협력업체 등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적용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망재해와 같은 산업재해 통계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불산 누출과 같은, 기업체에서 발생하는 최근의 각종 사건을 볼 때 모든 것을 법률적 규제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업주 책임 하에 노사가 다같이 참여하는 안전보건 경영시스템 문화가 확립돼야 사망재해와 같은 대형 산업재해가 점차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이다.

유철인 울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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