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행복·국가 경제 위협하는 산재
우선순위 문제 아닌 불변의 핵심가치
정책 개발하고 인식 전환해 근절해야

▲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1993년 4월 태국의 장난감 공장 케이더(Kader)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케이더는 미국의 유명한 TV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캐릭터 인형을 만들었다. 화재가 발생하자 근로자들은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공장문은 열리지 않았다. 근로자들이 인형을 훔쳐갈 것을 우려해 문을 잠가 두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188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여성이나 나이 어린 근로자였다.

그로부터 3년 뒤 4월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Committee on Sustainable Development)’가 열렸다. 회의 참석자들은 태국에서 사고로 희생된 근로자를 추모하는 촛불행사를 열었다. 그 후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날을 ‘세계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일터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것은 1964년부터다. 통계 산출이후 지난해까지 산업재해 근로자는 모두 460만명이 넘는다. 사망자도 8만9000명에 이른다. 비유하자면 지금까지 울산시 전체 인구의 4배쯤 되는 사람들이 산업재해로 부상하고, 울산 동구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사망한 셈이다. 지금도 우리 일터에서는 해마다 9만명이 넘는 근로자가 다치고, 1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

산업재해 피해는 인명손실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4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직접, 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액은 19조6000억원이 넘는다. 올해 울산광역시 전체 예산 3조2344억원의 6배가 넘는다. 산업재해는 국민 행복을 위협한다. 국가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먼저, 기업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안전이 고객 신뢰와 직원 사기,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데 필요한 경영활동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 안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업주다. 사업주가 안전을 경영의 핵심요소로 인식할 때 근로자가 안전수칙을 지키고, 산업현장에 안전이 정착된다. 물론 사업주가 안전에 관심은 있지만, 산업재해를 줄이는 방법을 몰라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전문기관이 안전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그러나 알면서도 안전법규를 지키지 않는 경우에는 사고 발생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기업이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지면 결국 기업은 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두 번째는 정부의 역할이다. 사업장에서 스스로 안전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제도 중에 산재예방요율제가 있다. 50인 미만 제조업을 대상으로 한다. 사업주가 현장의 위험요소를 발굴해 개선하는 ‘위험성 평가 인정’을 받으면 3년 동안 산업보험료율을 20% 인하해 준다. 사업주 교육을 이수하면 1년간 10%를 할인해준다. 이 제도를 통해 지난해 위험성평가 인정사업장의 재해율이 전년 대비 36%이상 줄었다. 사업주 교육 인정사업장 재해율은 11% 감소했다. 이들 사업장은 올해 약 270억 이상의 산재보험료를 할인받게 된다. 앞으로 사업장의 자발적인 참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 이틀 후면 ‘세계산업안전보건의 날’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산업재해로 고통 받는 근로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산업재해 예방은 우리 사회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핵심가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일터 안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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