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술은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가까운 벗,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 흥취를 돋우는 음료 따위로 인식되어 왔다. <적벽부>(赤壁賦)를 통하여 취흥을 도도하게 표현한 바 있는 소동파(蘇東坡)도 사실은 술을 몇 잔밖에 마시지 못하였다고 하니, 음주문화는 얼마나 마시느냐 하는 주량보다 어떻게 누구와 즐기느냐 하는 주법이 더 중요한 과제인 듯하다.

낚시를 하면 반드시 바다 위의 여섯 자라를 끌어내고
활을 쏘면 꼭 해 속의 아홉 까마귀를 떨어뜨려야 하리.
여섯 자라가 움직이면 어룡이 떨며 요동치고
아홉 까마귀가 나오면 초목이 타서 마르리.
사나이는 스스로 기특한 절개를 세워야 하거늘
어찌 족히 연약한 새와 조그만 물고기를 죽이겠는가?

釣必連海上之六鼇 射必落日中之九烏
六鼇動兮魚龍震蕩 九烏出兮草木焦枯
男兒要自立奇節 弱羽纖鱗安足誅

이 시는 고려 명종 때 문신 김극기(金克己)의 장편고시 <술 취한 때의 노래>(醉時歌)의 앞부분으로, 거나하게 취한 시인의 호기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평소에는 남의 이목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시인의 속마음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현실성 없는 호언장담이라고 할 이 언설의 내용은, 대장부라면 낚시로 멸치 따위의 조그만 물고기를 낚거나 활로 참새와 같은 작은 새를 쏘아 떨어뜨리는 좀스러운 짓을 하지 말고 삼신산을 등에 지고 있다는 여섯 마리의 자라를 끌어내거나 해 속에 산다는 아홉 마리의 삼족오(三足烏)를 떨어뜨림으로써, 온 바다 속의 어룡을 떨며 요동치게 하거나 세상의 초목을 다 태워 버릴 정도의 기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술 취한 때의 언사 속에 말짱한 정신으로 언표하지 못한 속마음이 담겨 있음을 뜻한다. 또 일정한 한도를 넘으면 실수가 뒤따르는 것이 음주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한시산책>의 연재를 마칩니다. 소중한 원고를 써주신 성범중 교수님과 독자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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