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더우니 여름이다. 당연하다고 여겨야 할 더위가 새삼스레 난감해져 묵혀둔 부채를 꺼내서 슬렁슬렁 바람을 일으켜 본다. 부채 바람은 지나치거나 넘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라 언제라도 참 좋다.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이 아름다운 시조는 ‘고금가곡’에 적혀 있다.

부채의 초기 형태는 접히지 않는 방구부채(團扇)로 종이나 비단을 사용하기 전에는 새의 깃털을 꽂아서 만들었다고도 추정한다. <삼국사기> 견훤조에 태조가 즉위하자 견훤이 공작선(孔雀扇)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황해도 안악 3호분 벽화에도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는 등장인물이 보인다.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말로 한자로는 선(扇)이다.

새 깃털로 만든 방구부채에 대해서는 고고학적으로도 재미난 자료들이 많다. 기원전 3~4세기 삼한시대 무덤인 창원 다호리 목곽묘에서 출토된 옻칠된 부채자루나 삼국시대 목곽묘 출토 부채자루들은 무덤 주인공의 가슴 쪽에 놓여 있어서 부챗살이 시신의 얼굴을 가리는 형상이다. 얼굴을 부채로 덮어 매장했음을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자유롭게 하는 접부채(摺扇)의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중국 송나라 곽약허의 <도화견문지>에 고려 사신 최사훈이 접부채를 사용했다고 하고 <선화봉사 고려도경>에도 서긍이 고려인들이 사용하는 접부채를 언급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에 ‘공조에서는 단오선을 만들어 바친다’라고 <동국세시기>에 단오진선과 사선의 풍습을 기록했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우리의 옛 속담도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의 여름 속에 조용히 머물고 있는 부채라는 물건은 참으로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다.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 부채손잡이(扇柄) 창녕송현동7호분 출토, <목기> 복천박물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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