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문득 책을 펼치다가 이 말이 새삼스레 깊이 와 닿는 유물을 만났다.

1597년(조선 선조30년) 음력 9월16일 우리의 수군 전함 13척이 일본 수군 133척을 격파한 명량대첩이 있었다. 이순신이라는 장군의 명성과 함께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곳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긴급탐사와 수중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재정물자를 실어 나르는 주요 바닷길이었던 명량은 조류가 빠른데다 와류현상까지 있어 해난사고가 빈번했다. 조사에서 확인된 유물은 토기와 닻돌, 거울과 숟가락 등 금속류, 그 중에서 고려청자가 466점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중국 송나라의 동전과 중국식 닻돌은 대외교류를 증명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는 바로 임진왜란 관련 자료인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과 석환(石丸) 4점, 노기(努機)의 발굴이다. 소소승자총통은 발굴조사 이전까지 실물이나 문헌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유물로 조선시대에 사용한 개인용 화기이다.

▲ 소소승자총통 小小勝字銃筒, 조선 1588년, 진도군 명량대첩로 해저 출수

길이는 57.5cm 남짓인 총통의 표면에 명문이 있다. 23자로 된 ‘萬曆戊子 四月日左營 造小勝字 重三斤九兩 匠尹德榮’. 1588년 4월에 좌영에서 제작한 소승자이며 무게는 3근9량이고 윤덕영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400년이 넘도록 소용돌이치는 거친 물살과 싸우며 그 곳을 지켰을 총통의 내부에는 흙, 종이, 화약 등이 남아 있었다. 실제 사용되다가 바다에 빠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누구도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었던 현장에서 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그 긴 시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르는 시간을 우리는 그저 찰나라고만 여길지 모른다. 허나 그 찰나는 사라질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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