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종교의 발흥이 울산에서도 시작된다
최제우 유허지 인근 동학관 부지 매입 완료, 내년 울산 동학이념 활짝(경상일보 8월6일 15면)
내년 하반기 울산시 중구 유곡동 수운최제우유허지(울산기념물 제12호) 인근(중구 유곡동 623번지)에 ‘동학관(東學館)’이 들어선다. 동학은 토속신앙에 유교와 불교와 도교, 그리고 천주교를 한데 아우르고 민족의 이념을 기치로 내세운 신흥 종교다.
최제우(1824~1864)는 나이 31세가 되던 해 처가가 있던 울산 유곡동 여시바위골로 숨어 들어왔다. 그는 이 골짜기에서 3칸짜리 집을 사고 6두락(한두락=한마지기=200평)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초당에서 줄곧 1년 동안 공부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승려가 찾아와 “…오늘 우연히 선생님을 뵙고 느낀 바가 있어 이 책을 올리겠습니다. 부디 이 책의 뜻을 풀어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책(을묘천서)을 주었다. 최제우의 깨우침은 여기서 시작됐다.
이어 최제우는 1856년 천성산 내원암(內院庵)에서 입산기도를 하고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寂滅窟)에서 다시 49일간 기도하며 도를 닦았다. 그리고 경주로 돌아와 용담정(龍潭亭)에서 수도한뒤 1860년 음력 4월5일 득도해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여시바위골은 입화산 동쪽 사면의 유곡골짜기로 잘못 알고 있는데, 사실은 유허지 바로 오른쪽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박동근씨(82)는 평생 유곡동에서 살았는데, 사람들이 ‘절터골(유곡골)’을 여시바위골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최제우유허지는 입화산(立火山)과 직선거리로 불과 1㎞정도 떨어져 있다. 두 곳 사이는 일제시대 때부터 소위 ‘기도빨’이 울산에서 가장 잘 듣는 장소로 정평이 나 있다. 입화산 안내간판에 “‘불꽃을 세우는(立火) 산’으로, 일제시대 이전에는 이 산에서 촛불을 켜 놓고 기도를 하면 다른 산보다 가장 효험이 있다고 하여 소원성취의 촛불이 꺼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고 소개돼 있다. 최제우유허지와 입화산 사이에는 가을만 되면 울산지역 고등학교 3학년 담임들이 고사를 지낸다.
토속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은 최제우와 입화산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작천정 입구 오른쪽 암벽에는 <人乃天(인내천)> 바위가 있다. 3.1운동과 여시바위골, 그리고 인내천의 정신이 울산에도 곳곳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