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대비 낮은 사망률로 주목 ‘K방역’
고령인구수 반영하면 낮은 수치 아냐
모집단 성격도 정확한 통계에선 중요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언젠가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서울에서 아파트 장만하려면 10년간 돈 모아야’라는 제목이었다. 이어지는 기사내용은 ‘서울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 100명에게, 아파트 장만하는 데 걸린 시간을 물었더니 응답의 평균이 10.2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대체로 10년 정도 돈을 모으면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니, 무언가 수상했다. 10년 이상 돈을 모았어도 서울에 아파트 장만을 못한 사람들은 조사대상인 모집단(母集團)에서 아예 통째로 빠져있었던 것이다. 나는 즉시 담당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통계숫자가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여론조사전문기자인 그는 나의 말을 이해조차 못했던 기억이 난다.

비근한 예를 더 들어보자. 예를 들어 KTX 타고 가는 사람 100명에게 물어보았다 치자. ‘KTX 얼마 만에 타시는 건가요?’라고 묻고, 대답을 모아보니 평균 7일이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 ‘한국인들 평균 7일 만에 한번 KTX 탄다.’라고 말해도 되겠는가?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술집에서 술 마시고 있는 사람 100명에게 물어보았다. ‘보통 며칠에 한번 마시며, 소주로 환산하면 얼마나 드시나요?’하고 물었더니, 대답의 평균이 3일 만에 한번, 마실 때 2병이었다고 하자. 이를 근거로, ‘한국인들, 평균 3일에 소주 2병씩 마신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국인들을 한국의 술꾼들이라 바꾸면 혹여 이해될 성 싶기는 하다만.

우리나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의료진의 헌신을 바탕으로 IT기술을 역학조사(疫學調査)에 연결하고, 진단키트 발명,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검진 등을 실시한 세계 최초의 국가임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초기방역에 성공한 대만이나 몽골, 베트남에는 못 미치지만 코로나19 관련한 통계숫자도 매우 우수하다. 통계수치에는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있다. 그러나 검진 안하면 확진자도 없을 것이고, 검진 많이 하면 확진자도 많을 터이니, 아무래도 확진자수보다는 사망자 숫자가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10월26일 현재 우리나라는 5200만 인구에 457명의 사망자가 나와 인구대비사망률이 10만 명당 0.88로써 다른 나라에 비해 꽤 낮다. 한편 의료체계가 워낙 달라 10만 명당 60~70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미주(美洲)·유럽 국가들은 제외하고, 우리와 체질과 형질 면에서 여러모로 비슷한 일본의 경우, 1억2600만 인구에 10월26일 현재 사망자수는 1733명이다. 일본의 인구대비사망률은 10만 명당 1.38이니 이점만 놓고 보면 K방역이 훨씬 우수해 보인다.

그러나 이 통계수치를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일본 모두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98%이상이 노년층에 집중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경우, 2020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15.1%인 780만 명이고, 일본은 28.4%인 3600만 명이다. 즉 사망자가 모두 노인이라 가정한다면, 한국의 노인 코로나 사망자율은 10만 명당 5.86, 일본은 노인 10만 명당 4.81이라는 얘기다. 두 나라 공히 젊은이의 사망자수는 사실상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인 즉 노인 수만 따지면 일본은 한국의 4.6배에 달하기 때문에 사망자가 많은 것이란 얘기다. 457대 1733, 0.88대 1.38, 5.86대 4.81 중 어느 것이 가장 의미 있는 비교수치일까.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해보자. A나라는 인구전체가 젊은이이고, B나라는 전체인구가 노인이라하자. 그러면 A나라에서는 사망자가 거의 없을 것이고, B나라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터이니, 비교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런 점에서 통계분석을 할 때에는 모집단의 성격이 매우 중요하며, 나아가 통계숫자의 의미를 일반화할 경우에는 지극히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요컨대 서민경제침체를 감수하고 국가지원금, 격리와 마스크착용, 거리두기, 모임금지를 거의 의무화 하고, 안 지킬 경우 벌금, 체포 등을 골자로 규제형(規制型) 방역을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거리두기, 마스크쓰기, 여행자제 등에 대해 자율권장형(自律勸奬型) 방역을 취하고 있는 일본의 방역특징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방역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더 더욱이나 없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다.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것이 핵심이유이지만 확진자수가 안정되다가도 간혹 대규모 집회라도 있으면 갑자기 급증하는 등 우려가 큰 탓도 있다. 감염루트를 모르는 깜깜이 확진자율이 28%를 넘었다는 사실도 공포심을 더하는 요소이다. 특히 우리나라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잠자고, 서울광화문 근처에서는 자동차 창문을 뚫고 나오는 특징이 있다하니 헷갈려서 정신마저 혼미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엄격한 방역수칙을 군소리 없이 철저히 지키면서 방콕하고 지내는 나 자신이 ‘웃프게’ 훌륭하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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