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벚꽃 개화시기 당겨져
벚꽃의 빠른 개화는 멸종 가져올수도
원인은 ‘내탓’…삶의 방식 고민해야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세상에! 3월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한꺼번에, 활짝 피었습니다. 부산지역에서 벚꽃 개화를 관측하기 시작한 1921년 이후, 102년 만에 올해 벚꽃이 가장 빨리 피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북반구의 봄은 빠른 속도로 찾아오고 벚꽃이 더 빠르게 피어납니다. 이게 모두 ‘지구온난화’란 사람의 죄인데, 벚꽃이 대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서 있습니다.

기상청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3대 봄꽃의 개화일이 ‘최대 27일’ 당겨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와 유사하게 온실가스를 내뿜는다면 미래의 봄꽃들은 2월에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를, 지금 벚꽃은 제 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서운 봄이 찾아와 있습니다.

일본은 현실적으로 벚꽃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벚꽃의 빠른 개화는 결국 ‘벚꽃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6조억 원의 경제가치를 가질 정도로 벚꽃놀이를 즐기는 일본의 고민은 오래지 않아 우리의 고민이 될 것입니다. ‘집단지성’으로 나무와 꽃의 고통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자연의 멸종은 결국 사람의 위기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활짝 피었던 벚꽃 사이 벚꽃이 지고 있습니다. 4월의 꽃이었던 벚꽃이지만, 4월이 오면 꽃은 지고 새잎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청록파 시인 지훈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고 ‘낙화’라는 시의 처음을 노래했습니다만, 이제 그 탓은 바람이 아니라 사람에게, 우리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꽃이 빨리 피는 이유, 빨리 지는 이유 모두 다 ‘내 탓’이 되었습니다.

저는 벚나무에 많은 신세를 지며 자랐습니다. 벚꽃의 도시에서 태어나 나무와 같이 자랐습니다. 벚나무는 언제나 제 가까이에서 천천히 혹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계(四季)를 제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나무와 나란히 서서 꽃을 맞이하고, 꽃을 떠나보냈습니다. 제가 가진 감성의 팔 할은 벚꽃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 감성에서 시가 나왔으니, 제 시는 고향에 뿌리를 내린 식물성입니다.

돌아보면 피는 벚꽃에 열광했고, 지는 벚꽃에 눈물을 훔쳤습니다. 피는 꽃에서는 기다림의 자세를 배웠고, 지는 꽃에서는 작별의 미학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벚나무에 등을 기대거나 이마를 대고 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주술을 걸었던지요. 그리고 벚꽃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돌아보면 나무는 나에게 친구였고 스승이었습니다. 지금 그 벚나무들이 큰 혼란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벚꽃이 피기를 열망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이 지면 덧없어지기 마련입니다. 열망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데 꽃은 왜 꽃가지를 떠나는 것인지 궁금하곤 했습니다. 꽃이 필 때는 가진 것 없어 남루하였지만 봄의 주머니가 그득그득 찬 것 같았는데, 꽃이 지면 마음이 흘러가는 흰 구름인 양 아득하고 정처 없었습니다.

세상에 나무만한 위대한 스승이 있겠습니까. 꽃나무에 꽃이 피는 가속도를 만들고 있는 우리의 잘못은 미래 아이들의 도량을 파괴하고 스승을 빼앗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구에서 나무 한 종이 멸종되어 사라지는 일, 그것은 미래의 많은 철학자를 죽이는 일일 것입니다. 미래의 수많은 시인을 사라지게 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4월이 오기 전에 벚꽃은 분분한 낙화를 시작할 것입니다. 눈이 귀한 남쪽에서 벚꽃의 낙화를 ‘4월의 폭설’이라 이름하며 그 아래 눈사람인 양 서 있곤 했는데요. 저는 ‘닥터 지바고’가 되었다가 ‘시인 이용악’이 되었다가 꽃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손금 같은 운명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요. 철 이른 개화와 낙화는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것이 가진 것 하나하나 잃어가는 일이라지만 불처럼 뜨거웠다 얼음처럼 차가워집니다. 벚나무는 지금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우리에게 어떤 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무의 가르침은 지금은 유효한 우정입니다. 그 우정에 귀를 열어야 할 3월입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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