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형·서번트 리더로 전쟁 진두지휘
목숨 건 솔선수범으로 국민 지지 얻어
겸손함 갖춘 언행일치 지도자로 우뚝

▲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리더의 자질로 의사소통능력이 가장 중요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업직무교육 전문기관인 휴넷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리더’는 부하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소통형 리더’(52%)이었고, 구성원을 존중하고 섬기는 ‘서번트 리더’가 2위이었다. 카리스마 리더는 하위에 속했다. 최악의 리더는 ‘언행불일치형 리더(37%)’이었고, 이어 명령과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형 리더’와 구성원을 믿지 못하는 ‘불신형 리더’이었다.

현대적 리더에게 ‘소통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하나 사례는 2020년 환경부 공무원 설문조사이다. 부처 직원들은 조직의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인격적인 소통능력’(45%)을 꼽았으며, 이어 ‘비전제시 및 통합·조정 능력’과 ‘원칙과 소신에 기반한 업무추진’이 차지했다.

두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상하소통을 무시하고 아직도 카리스마형이나 권위형 리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상사가 있다면, 조만간 퇴출되는 신세가 되리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이 의사소통능력을 계발하려는 리더이거나 취업 준비생이라면, 차별주의를 근간으로 거친 언어와 험악한 표정으로 기억되는 미국 전직 대통령 트럼프를 닮지 말고, 절제된 언어와 호소력있는 표정으로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일단 모델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다.

2019년 봄, 젤렌스키의 대통령 당선은 의외였다. 배우 출신 신출내기 정치인 젤렌스키는 취임 초기, 경솔한 발언과 인사문제 실패 등으로 국민의 비판을 받았으며, 러시아 침공 경고에 둔감했고 전쟁대비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결과 70%를 기록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30%까지 추락하면서 민심은 이탈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극적으로 재기할 기회가 생겼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미국의 예상을 모두 깨면서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는 24시간 공격받는 공포의 키이우 광장 한복판에서 장관들과 함께 “(여러분의) 대통령은 여기 있습니다.” “(저에게는 도망갈) 차량이 아닌 총알이 필요합니다(I don’t need a ride, I need ammo)”라고 말하면서 미국의 국외망명 권유를 거부하고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목숨을 건 솔선수범 덕분에 지지도는 91%까지 뛰어올랐다. 골리앗에 대항하는 용기있는 다윗처럼, 전쟁영웅이며 언행일치의 지도자로 등극했다. 현재 미국인들은 자국 바이든 대통령보다도 젤렌스키를 더 좋아한다.

젤렌스키는 전쟁발발 8일째 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소박한 벙커를 공개해 국민과 세계인과 소통했다. 자신이 강인한 결단력을 갖게 된 것은 “특별한 국민들” 덕분이라고 겸손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그런 공포를 느낀다고 말하면서 “다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As president, I have no right to be afraid for myself,)”라고 책임있게 답했다. 그는 2022년 4월 부활절 연설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돌보소서. ~피란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이 잔인한 놀이를 강요당한 아이들의 삶을 굽어살피소서.”라며 인류애와 평화를 간구했다.

그는 2023년 4월 우크라이나 전황부터 도청까지 민감한 사항들이 담긴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가 유출되었을때,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지원을 받고는 있었지만 젤렌스키는 기밀문서 유출 문제를 다루는 백악관의 태도에 대해 “백악관의 명성에 이롭지 않으며, 미국의 명성에도 이롭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미국의 잘못을 지적하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동맹국에 대한 절제된 소통 방식을 보여주었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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