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 ‘꿀잼도시’
지자체와 지역 문화예술인 머리 맞대
산업수도 품은 문화예술도시 꽃피워야

▲ 이재명 논설위원

울산의 정책 기조가 좀 바뀌었다. 기업유치, 미래 첨단산업 등을 앞세워 ‘산업수도 울산의 복원’을 외치던 울산시 8대 민선시장이 정책의 궤도를 문화예술 쪽으로 방향을 조금 틀었다. 그 동안 김두겸 시장은 오로지 산업수도 복원에만 매진했었다. 그러다보니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의 불만이 조금씩 표출돼 온 것이 사실이다. 김 시장이 이같은 여론을 재빨리 캐치해 정책에 반영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 시장이 취임 초부터 부르짖어왔던 것은 ‘꿀잼 도시’다. 1년 반 이상 매진했던 산업부흥 정책에 이제 ‘꿀잼 도시’이라는 옷을 덧입히겠다는 것이다. 산업수도에 꿀잼도시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게 바로 우리가 원했던 꿈의 도시다. 단지 ‘꿀잼’이라는 용어가 오락실에서 청소년들이나 쓰는 용어로 전락할까 우려스럽기는 하다. 아닐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만 울산시민에게 문화예술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본다.

문화예술이라는 탑은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없는 것이다. 거대한 음악당 하나 만든다고 갑자기 전국 예술 애호가들이 울산으로 모여들고, 울산 시내 길거리에 예술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거대한 금자탑을 만들듯이 문화예술인들의 정성이 한땀한땀 더해져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원래 울산의 토양은 공장이 깊이 뿌리 내린 척박한 땅이었다. 근로자들은 새벽별을 보고 출근했고, 한밤중 달 그림자를 밟으며 퇴근했다. 많은 시민들은 어린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예술’이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다. 필자도 서울로 진학하면서 비로소 연극이라는 낯선 개념에 눈떴다. 그런 남쪽 변방 울산 땅에 민선 8기 집행부가 ‘꿀잼 도시’의 꿈을 퍼뜨리겠다고 하니 반갑기는 하다.

사실 지역의 문화예술은 서울·경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문화예술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지역의 예술인들은 설 자리조차 없어지고 있다. 책을 쓰는 작가나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 춤을 추는 무용가,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등 많은 문화예술가들은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예술가들이 서울로 줄줄이 올라가니 덩달아 관람객들도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한 도시가 획일화된다는 것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이 메말라간다는 뜻이다. 그 동안 울산은 ‘산업수도’라는 타이틀을 뺏기지 않으려 무진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국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그린벨트를 풀고, 공장부지를 확보하고, 기업을 유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다 잘 사는 울산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쪽이 융성해지면 또 한쪽은 메말라지는 것이 도시 영고성쇠의 이치다. 울산은 그 동안 산업 일변도로 직진만 해온 도시다. 그 결과 다시 도시에 비해 문화예술 기반이 턱없이 약하다. 산업수도에 ‘메마른 도시’라는 닉네임까지 붙을 정도다.

문화예술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고 끊임없이 가꾸고 관리해야 한다. 장석주 시인의 시처럼 한 알의 대추가 빨갛게 익는 것은 그 동안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 땡볕, 초승달이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울산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큰 건물의 건립과 거대한 행사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작은 꽃들에 물을 주는 지자체의 정성과 보살핌이 더 중요하다. 바람을 막아주고 얼지 않게 품어주는 극진한 진정성이 있어야 비로소 꽃밭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꿀잼’이라는 나무는 하루 아침에 크는 게 아니다.

올해 김두겸 시장의 ‘꿀잼’ 정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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