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형석 사회문화부 부장대우

울산시청 인근에 위치한 지역 IT기업이자 중소기업인 ‘아이티공간’ 본사 사옥 1층은 여타 기업체와는 사뭇 다르다. 일반인 회사 건물 1층은 기업을 알리는 홍보관이나 안내데스크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곳은 공연과 전시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잇츠룸’(It’s room)으로 명명된 이 곳은 이른바 산업과 문화가 융합된 산업문화갤러리다.

못 쓰는 산업자재와 주변 사람들이 기증한 물건 및 작품 등으로 탄생한 ‘잇츠룸’은 ‘한 사람의 인생이 작품이 되는 공간’을 슬로건으로 폭넓은 분야의 예술인들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의 많은 작가들이 잇츠룸 갤러리를 기반으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각종 공연과 포럼, 이벤트 등도 이뤄지고 있다. 낡고 칙칙했던 직원들의 휴게실이 지역민들의 사랑방으로, 이제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공공 문화예술기관보다 문턱도 낮고 대관 비용도 저렴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철도 덕후 이재홍군의 ‘울산소년 기차역 만물전’이 열렸고, 이달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했던 김태민 박사의 ‘한글전’이 열리는 등 다양한 주제에, 또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전시회가 마련되며 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울산은 그간 대기업 중심의 메세나(Mecenat)를 통한 문화예술 활동 지원은 있어 왔지만 이러한 중소기업의 문화공간 조성과 문화예술 활동 지원은 흔치 않은 사례다. 이런 가운데 지역 대기업들도 최근 몇 년 새 메세나 활동에 그치지 않고 주도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개척해 기업 이미지 제고 등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HD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산하 현대예술관을 통해 오랜 기간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오고 있는데, 간접 지원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는 뮤지컬 제작에도 직접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생생한 울산 생활 적응기를 담은 뮤지컬 ‘조선의 뚜야’를 기획·제작, 현대예술관에서 초연했는데 큰 호응에 올해 1월초 5차례 추가 공연을 갖기도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진솔한 스토리가 마음에 와 닿았다는 호평이 잇따랐다. 조선업 현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고 있는 현실에 뮤지컬 제작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조선소 적응 등을 돕고 기업 이미지도 제고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또 SK이노베이션은 울산CLX 정문에 올해 1월 라스베이거스CES에 공개된 SK그룹의 ‘매직스피어’(일명 Wonder Globe)를 하반기에 설치하고, 울산CLX 도로변의 회색빛 석유 저장 탱크와 공장 건물·담장에 국내외 유명작가가 직접 예술작품(그라피티, 벽화)으로 채워넣는다. 삭막했던 울산 석유화학공단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 울산은 오래전부터 공업도시 이미지에서 탈피, 생태와 환경, 이제는 문화와 관광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때 기업들의 이 같은 문화 접목 시도 노력은 의미가 적지 않다. 행정기관의 힘만으로는 문화도시로 나아갈 수 없다. 민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형석 사회문화부 부장대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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